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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1 (수)

[만물상] 역사를 바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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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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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나고 20년 넘도록 독일을 향한 폴란드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데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1970년 12월 폴란드 방문을 계기로 용서하자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브란트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 꿇은 사진의 위력이 특히 컸다. 신문들은 “무릎 꿇은 이는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라고 했다. 당시 폴란드 총리도 눈물을 흘리며 “용서한다. 잊기는 힘들지만”이란 반응을 내놓았다.

▶1945년 2월 미군 해군·해병대는 태평양 작은 섬 이오지마에서 악전고투 끝에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커다란 국기를 군인 여럿이 힘을 합쳐 일으켜 세우는 사진이 미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신문의 접히는 부분에 사진을 배치했다가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사진 위치를 바꿔 다음 날 다시 실은 곳도 있다. ‘이오지마 깃발’을 기리는 전쟁 기념비가 전국에 세워졌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상징도 이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네이팜탄이 떨어진 마을을 알몸으로 울면서 벗어나는 소녀 사진은 네이팜탄의 민간인 거주지 사용 금지 국제협약을 이끌어냈다. 내전이 터진 수단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던 독수리를 찍은 사진을 계기로 수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우리가 아는 9·28 서울 수복 중앙청 태극기 게양 사진은 ‘이오지마 깃발’처럼 나중에 재현한 것이다. 그럴 정도로 사진이 갖는 효과가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유세장에서 총기 피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찍은 사진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오른손을 치켜들고 “싸우자”고 외치는 모습과 그의 뒤로 푸른 하늘 아래 나부끼는 성조기가 19세기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구도와 놀랍도록 흡사해 이목을 끌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정치인들은 이미지가 지닌 힘을 주목해왔다. 2차대전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오지마 깃발의 영웅들’을 귀국시켜 전쟁 자금 모금 캠페인에 활용하려 했다. 트럼프 진영도 이번 피격 사진을 대선전에 쓸 것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파리 시민들이 입헌군주제 확대를 요구하며 봉기했던 1830년 ‘7월 혁명’에 대한 지지를 담은 작품으로 이후 공화제 전환의 기폭제가 됐다. 트럼프가 이런 ‘자유의 여신’과 어울리는 사람인지, 그 반대인지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것이다. 이 사진이 11월 미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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