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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대학교 등록금 완전 자율화, 화급하다 [조선칼럼 박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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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첨단학과 신설·증원

규제 풀었는데도 너무나 미미

문제는 실력파 교수 확보할 자금

등록금 인상률 16년 합쳐 4.2%

계속 동결하고 정부 지원도 없다면

첨단산업 인재 양성 아예 불가능

교육부는 등록금 결정 손떼고

대학별 완전 자율화 하게 해야

조선일보

31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 호텔에서 열린 '2024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정기총회에 대학 총장들이 참석해 있다. 이날 대교협은 정부에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규제 폐지, 소규모 대학 국가적 정책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대정부 건의문을 전달했다. 2024.1.31/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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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경제의 장래가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에너지, 신소재 등 첨단 미래 산업의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가장 철벽 규제라는 수도권 규제까지 풀어서 첨단학과의 경우 수도권 대학에 대해서도 학과 신설, 증원을 허용하기에 이르렀겠는가? 학생 정원을 늘릴 때 요구되는 교사, 교지,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의 조건도 교원만 남겼고 교원의 1/3을 전임이 아닌 겸임, 초빙교수로 채워도 된다는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했다.

그러나 2024년 수도권 첨단기술 학과의 입학 정원 순증은 817명에 그쳤다(비수도권 1,012명을 더하면 1,829명). 각 대학이 얼마나 신청했는지, 왜 다 허용해 주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교원만 확보하면 증원해도 좋다고 했으니 증원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교원 확보 계획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공계 첨단학과의 경우 실험, 실습 시설과 교원 확보에 다른 학과들에 비해 엄청난 비용이 든다. 교수 요원의 경우 다른 나라의 다른 대학들과는 물론 미국, 중국 등의 세계 최대 기업들과도 유치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부 입장에서 무슨 돈으로 교수와 시설을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았을 수도 있다.

요컨대 첨단 분야의 인재 양성은 대입 정원이 아니라 대학 재정력의 문제인데 지금 우리 대학의 재정 형편은 고사 일보 직전에 있다. 2000년대 들어서 6%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했던 사립대 등록금 인상률은 2009년 0.5%로 떨어지고 10, 11년에 1.5, 3.0%로 약간 회복되었지만 2012년 -3.9%로 원점으로 돌아간 후 지금까지 16년간 다 합쳐서 4.2% 오르는 사실상 동결 상태를 유지했다. 소비자물가가 39.3% 올랐으니 실질 등록금 수입은 25%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학생 수 감소로 2011년 13.6조원이었던 등록금 수입이 작년에는11.4조원으로 줄었다. 반값 등록금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은 대학교육의 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겠지만, 등록금 동결이 계속되고 이를 벌충할 정부의 지원도 없다면 첨단산업 인재 양성은 불가능하다.

법에 의하면 대학 등록금은 직전 3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왜 안 올렸냐고 대학에 물어보면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 II 타입을 배정받지 못하게 되고 다른 예산 지원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어서라고 한다. 올해 법상 인상 한도인 5.64%만 올렸다면 6,400억원 정도의 재원을 더 마련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주먹구구 계산이지만 소비자물가만큼만 매해 올렸어도 올 한 해에 4조원 이상, 법이 허용하는 1.5배를 계속 올렸다면 6조원 이상의 재원을 더 가지고 첨단 학과의 시설과 교수 확보에 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올해 타입 II 국가장학금은 3,500억원이다. 지금이라도 대학은 일치단결하여 이 국가장학금 예산을 거부하고 등록금 인상의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대단히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할 줄 안다. 그 사이에 학생 대표가 3/10 이상을 차지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대부분 대학이 전문가 1명 이외의 위원을 학생과 교직원이 반분하는 구조의 위원회를 설치했고 학생 대표들은 등록금 동결을 소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장이 다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졸업 후에 전공 분야에서 일할 가능성이 희박한 학생이라면 어떻게든지 등록금을 한 푼이라도 덜 내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 그러나 전공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 그 분야에 종사할 생각인 학생은 등록금을 좀 더 내서 더 실력 있는 교수도 모시고 실험 실습 장비도 현대화해서 그 학교 출신이라면 세계 일류 회사에서 앞다투어 모시고 갈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등록금 결정 단위를 분야별로 세분화하고 해당 학과의 학생과 교수가 주도적으로 용처를 정하게 하는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내가 더 낸 등록금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위해서 쓰인다면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을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우지간 교육부는 등록금 결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등록금 결정 방법 자체를 자유화해야 한다.

어떤 문제든 모으면 큰 문제가 되어 합의가 어렵고 쪼개서 작은 문제로 만들면 합의가 쉬워진다. 사람 수가 많으면 실질적인 협의 자체가 불가능하고 선동이 더 쉬워진다. 온 국민이 다 원하는 하나의 결정을 정부가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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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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