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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Startup’s Story #458] “맛의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10전 11기 창업자의 새로운 도전은 데이터 기반 ‘미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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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숫자라 말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사업에서 성과를 만드는 건 숫자가 아니라 목표와 신념과 철학이다. 그간 만난 수백여 명의 스타트업 창업자들 모두 각각의 이유와 미션을 이야기했다. 한 사람도 같은 이유를 말한 적이 없지만,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딱히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본능’ 같은 것이다. 김철범 딥플랜트 대표도 그런 본능이 있는 사람이다.

김철범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그는 전자책 업계 선두권 스타트업의 CEO였다. 그가 앞선 사업을 뒤로하고 2019년 숙성육 사업을 한다고 스치듯 이야기했을 때 의외였다. 그의 사업 이력과 접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사업 개시를 한 김철범 대표를 고양시 딥플랜트 본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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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범 딥플랜트 대표 ⓒ플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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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2013년에 만났을 때는 전자책 스타트업 대표였다. 사업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LTE 환경으로 넘어가면서 소비자 패턴이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었는데, 모바일에 적응을 못 했다. 자체 콘텐츠를 만들어 돌파구를 마련하는 등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1999년 첫 창업을 했으니 벤처 1세대다. 전자책 사업이 9번째 창업이었다.

22년 전 인터넷 웹페이지를 만드는 아이템이 첫 창업이었다. 이후 대기업 계열사에 방수케이스, 정부 기관에 특수장비를 납품하기도 했다. 제조 사업에 대한 소양이 생겨서 2003년 애완견 드라이어를 야심 차게 내놓았다. 지금 하면 잘 될 거란 이야기 많이 듣는다. (웃음) 다만 2003~2004년 때는 경기가 안 좋을 때다. 기르던 애완견도 파양되는 이슈가 많았던 때에 10만 원 대 제품은 경쟁력이 없었다. 그 뒤 미국으로 가서 프랜차이즈 지점을 하나 인수해서 2년간 운영했다. 그다음에 한 것이 전자책 사업이다. 전자책 사업을 접은 뒤 네트워크 기반 교육 사업을 했다. 지금 창업은 2019년 쉰 살에 시작한 11번째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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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뉴욕에서 열린 디지털 북 월드(Digital Book World)에서의 김철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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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업을 한 거다. 2040 때와는 느낌이 달랐을 듯싶다.

청년에 맞춘 틀에 중장년을 맞추는 건 효과가 떨어진다. 중장년 창업자의 공통된 고민은 첫 단추를 어떻게 껴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중장년 창업자들을 멘토링 할 일이 있었는데, 일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소위 린(Lean)한 방법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원자들 상당수가 사업이 아니라 장사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아이디어 자체가 최근 트렌드와 동떨어진 경우도 많다. 사업 계획서를 낼 때 브로커를 통해 하는 사례도 꽤 된다. 자신이 잘 하는 영역이 아니라 정부 지원이 되게끔 서류를 작성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지원 사업은 지속성이 없기에 자금 회수를 안 당하는 요건만 마치고 폐업한다. 중장년 지원 사업은 청년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특히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원활하게 진행될 거다. 중장년이 가진 경험을 활용해 후세에 넘겨줄 방법을 고려하는 방식이길 바란다.

이번 창업에 앞서 투자자를 만나기도 했나. 업계에서 성실한 창업 실패는 훈장으로 여겨진다. 투자자가 실패한 창업자의 재창업에서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이 실패에서 배운 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3억 원 규모 엔젤 투자를 받았다. 선물로 우리 숙성육을 먹어 본 사람이 찾아와서 한 번 더 시식하더니 빠르게 결정해 줬다. 2주 만에 입금이 됐고 밸류도 잘 받았다. 하지만 VC(벤처캐피탈) 쪽 반응은 아직 없다. 사업 준비를 하면서 국내 대부분의 VC에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보냈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안 된다는 회신이 대부분이었고 답이 없는 곳도 많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나이도 한 요인이었을 거다. (웃음) 그렇다고 VC 투자를 포기한 건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보다 디테일한 가설 증명이 이루어지면 다음 투자의 근거가 될 거라 본다.

이번 창업 팀빌딩은 어떻게 했나.

팀원은 가까운 곳에서 찾았지만 능력자과 함께하고 있다. 일례로 회사 서정근 이사는 교회에서 1년간 봉사를 같이 한 사이다. 그 과정에서 합이 맞아 열심히 제안해서 영입했다. 서 이사는 영화 쪽에서 본인 사업을 크게 하던 사람이다. 회사 밖에선 앞선 창업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투자와 기술 부분에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모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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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5일 오픈한 딥플랜트의 첫 번째 오프라인 매장 ‘딜리시미트’ 외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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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울랄라랩 스마트팩토리와 연동되어 숙성고의 온도와 습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딥플랜트는 배달 차량용 온도, 습도 센서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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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별로 숙성된 제품이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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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창업은 대부분 제조와 ICT 분야였다. 숙성육을 창업 아이템으로 정한 배경은 뭔가. 준비 기간도 2년이나 걸렸다.

정육과 축산 영역은 유통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화가 크지 않았다. 데이터 활용 방식도 없다. 특히 소비자가 고기를 선택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시장에서 고기 맛의 기준은 산업과 식당이 정한다. 재래된장과 간장처럼 만드는 사람 입맛에 맞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맛있다고 느낀 고기를 언제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우리의 방향성이고 목표다. 그걸 숙성 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연구를 했고 맛이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을 세 등급으로 구현했다. 그런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2년간 사업성을 키워왔다. 경우의 수를 많이 축적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가격이 아니라 맛으로 등급을 구분해서 판다.

국가의 등급제가 아닌, 소비자가 선택하는 등급제를 만들려고 하는 거다. 그게 좋은 고기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얼마전 오픈한 오프라인 매장명이 ‘딜리시미트’인가.

딜리시미트는 매장명이자 우리 브랜드명이다.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맛있는 고기를 파는 ‘미육점(味肉店)’을 지향한다. 본사 가공 공장에서 모든 육류를 데이터 기반으로 숙성하고 세절 작업을 해서 개별 스킨 포장한 후 신선육, 가공육, 양념육, 간편식 등으로 판매한다. 매장 콘셉트는 소비자가 보고 선택해서 바로 가져갈 수 있는 다크스토어(dark store) 개념이다. 본사와 매장이 있는 지역에서 배달과 픽업도 가능하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육점이 많이 생겼다.

허들이 낮기 때문이다. 보통 3~4명이 창업하는데 한 사람당 한 달에 3~400씩 벌어간다. 매출로 보면 매력적인 산업이지만, 발전은 미미했다. 기존 정육점은 등급제로 파는 것도 여의치 않다. 쇠고기는 지방만 많으면 등급이 올라간다. 어느 순간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좋은 고기라는 인식을 해버리게 됐다. 지혜롭지 못하게 먹는 거고 식용 가축을 잔인하게 사육하는 현상이 생겼다. 마블링 유무에서 출고 가격 차이가 나기에 몇 개월간 집중적으로 수입 옥수수 사료를 먹인다. 옥수수는 당 덩어리 아닌가. 소비자가 마블링 많은 고기를 찾기에 농가도 별수 없이 하는 거다. 육류 등급은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 미국 1등급 고기가 우리나라에선 2등급 밖에 못 받는다. 특히 돼지고기는 등급제와 관련되어 업계에서 이견이 많다.

축산시장은 고기 부위,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딥플랜트 제품군의 가격대는 어떤가.

우리나라 축산시장의 문제 중 하나가 부위별 가격 균형이 안 맞는다는 거다. 돼지 한 마리 지육 금액의 대부분은 삼겹살 값이라고 보면 된다. 삼겹살과 목살을 제외한 다른 부위는 부가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우린 숙성과 양념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서 가격을 합리적으로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공 공장과 협의해서 좋은 금액에 원육을 받아 숙성 가격만 붙였다. 마장동 경력 30년의 우리 파트너가 원육은 완벽하게 공급해 주고 있다. 항생제도 쓰지 않는 고기다. 믿을만한 곳에서 잡아서 그날 작업해서 바로 들어온다.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비해서는 낮고, 작업이 많이 들어가기에 정육점에 비하면 다소 높은 수준이다. 올해 우리 목표는 비선호 부위를 잘 만들어서 전반적인 가격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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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랜트 본사에서 숙성이 진행 중인 제품들 ⓒ플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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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에 데이터가 왜 필요하고, 중요한 건가.

먹거리를 지혜롭게 먹을 수 있는 데이터라고 보면 된다. 그걸 기반으로 한 숙성으로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하면 소화가 더 잘 되는 제품, 종국에는 배양육도 가능할거다. 그 일환으로 실버세대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케어푸드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고기의 일반 맛부터 깊은 맛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보통 고기는 식으면 질기고 맛이 없지만 우리 제품은 그렇지 않다. 그 부분은 자신 있다. 이 정도 맛만 나온다면 고깃집을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었다. (웃음) 물론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완벽하진 않다.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걸 하고 있다.

아이디어만 있다고 해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장비도 갖춰야 하고 고기도 조달해야 한다.

정부의 창업 지원 덕을 봤다. 중장년 예비창업패키지가 되면서 아이디어 검증을 할 수 있었다. 숙성 장비를 만들어 연구논문 등에 기재된 방식과 우리가 생각한 방식을 골고루 테스트했다. 가공 농장을 하는 지인이 있어서 장비를 싣고 제주도까지 갔다. 아이디어 검증이 마무리된 뒤 재도전 창업패키지에 선정돼서 공장 시설을 갖춰 소비자에게 판매가 가능하게 됐다. 이 사업은 공간이 필요하다. 현재 1.8톤이 창고에 있는데, 매장 하나 소화분이다. 그래서 올해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단백질에서 맛을 뽑아내는 제품을 판다. 근본적인 질문인데, 숙성육이 건강에도 좋은 건가.

우리가 아는 일반 고기 맛은 지방에서 나온다. 마블링도 지방층을 말하는 거다. 하지만 건강 측면에선 지방보다는 단백질이 좋다. 지방은 많이 먹을수록 대장암 발병률이 높다. 단백질 숙성을 하면 아미노산이 올라와서 감칠맛이 난다. 소비자 테스트 결과를 보면 단백질 숙성 고기는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고 부담이 없다. 그렇다고 숙성한 고기가 맛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맛은 개인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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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랜트 본사 내부 전경 ⓒ플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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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랜트의 특허기술이 적용된 숙성장비 ⓒ플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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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 특허를 가미한 장비가 있다. 어떤 특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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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압과 초음파 온도조절을 하는 숙성 장비다. 숙성 방법 변화를 주는 다음 모델을 준비 중이다.

숙성을 한다 해도 고기는 여타 제품에 비해 유통기간이 짧다. 수요예측은 어떻게 하나.

현재까진 사전 조사에 근거한 감이다. 지역 정육점을 모두 다니면서 인터뷰를 하며 매출 등 현황을 파악했다. 그걸 알아야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는데, 현재 이슈는 콜드체인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스팩을 많이 넣고 보내도 온도 변화는 있다. 숙성 제품은 온도 변화가 심하면 부패로 넘어갈 수 있기에 조심스럽다. 겨울에는 리스크가 적지만 여름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계절이라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걸 극복하려면 패킹(포장)과 콜드체인이 해결되어야 하는 데 추가 비용이 든다. 한꺼번에 많은 주문이 들어오는 것도 품질 관리 측면에서 좋은 현상은 아니다. 예약제 등을 고민하고 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현재는 지역기반으로 운영하고 4시간 내 배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프라인 스토어를 연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도 배달을 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배달 시스템을 개발해 모니터링이 실시간으로 되게 할 거다. 차량용 센서도 도입해 소비자가 자신이 주문한 고기가 몇 도에서 오는지 모바일로 알려준다.

제품이 많이 팔리려면 온라인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우리한테 남은 숙제 중에 하나다. 숙성 시간이 필요하기에 온라인으로 많이 들어오면 물량의 한계가 있다. 예약제 등으로 어느 정도 기다리게 하는 것은 허용되겠지만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경험은 아니잖나. 무엇이 효율적일지를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다. 입소문 방식이 좋긴 하다. 우리 제품을 접한 한 고객이 30명을 끌고 온 케이스도 있다. 고기 살 때 우리에게 가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는 최소한으로 알리고 추세를 보는 중이다.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한 부분이다.

프랜차이즈가 돼도 좋을듯싶다.

생각은 하고 있다. 2호점은 자기가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웃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늘리는 건 빠르게 할 수 있을듯싶다. 스타벅스 커피처럼 고기 맛을 나눌수 있을거다. 하지만 제품과 서비스 품질이 고르게 제공되려면 할 것이 많다. 제품에 대한 설명도 해야 하고 숙성도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고민 중이다.

이제 막 본 사업을 시작했다. 소감을 말해준다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고 기대된다. 역시나 가장 크게 힘이 되는 건 소비자 반응이다. 한 번 구입한 사람들의 한 달 뒤 재구매율이 80%에 근접한다. 우리가 생각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는 것만큼 기분 좋은 건 없다. 소비자가 경험이 낮아지지 않게 노력하려고 한다. 그리고 축산물 시장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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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랜트 팀이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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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 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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