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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기고] 코로나보다 무서운 대공황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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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계의 경제주체들은 코로나19로 대공황 재래(再來)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각국 경제가 감염병으로 인한 불확실성 쇼크로 미증유의 침체에 빠져 가히 대공황을 방불케 한다. 이에 각국 정부는 추가적인 경제악화를 막기 위해 경쟁적으로 확장적 금융·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의 효과는 여러 가지 부작용, 특히 인플레이션 복병 때문에 단기효과에 그치고 세계경기가 더블 딥(double dip)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시 세계인들은 전례 없는 경기 악화로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한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주요국들은 대공황의 최악 시점인 1933년부터 전례 없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미국우선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뉴딜을 통해 국내 경기활성화에 열을 올렸다. 독일 나치는 통제경제체제하에 공공사업과 군수산업 육성으로 대공황 늪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주도의 '반시장적' 경기대책은 단기 성과에 그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결국 긴축으로 돌거나 한계점에 도달해 반쪽의 회복에 그쳤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비대해졌고 민간경제는 극도로 위축됐다.

지금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그걸 빌미로 보호주의·국가주의가 더 강해지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돼 1990년대에 가속화한 '제2차 세계화'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으로 이미 크게 후퇴한 상황에서 반세계화 추세가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번 사태로 제2차 세계화가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 대공황을 거치며 국제무역·통화질서가 완전히 붕괴됐고 미국 지상주의·나치 군국주의가 발흥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걸 상기해야 한다.

미·중 무역분쟁이 코로나19로 다시 고개를 들었고, 국가주의 조짐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런 추세가 세계적 가치사슬을 단절시키면 실물경제를 한층 더 악화시킬 뿐 아니라 금융경제에 압박을 가해 각국 금융기관의 도산, 개도국의 국가부도 등 세계적 금융위기를 연쇄적으로 유발한다. 극단적 보호주의와 금융위기로 WTO와 IMF가 기능을 상실하면 국제무역·금융시스템 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제2차 세계화가 종말을 맞이하고 두 번째 대공황이 현실이 된다.

극한 상황을 막으려면 국제 공조와 협력이 절실하다.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분명 우리의 역할도 있다. 국내적으로는 정부가 단기 인기영합적 미봉책을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친화적 정책을 통해 민간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민간기업이 위기를 기회로 삼게 기업 투자·기술혁신 의욕을 고취하고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감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하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일자리 유지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산업·기업 구조조정을 막아서도 안 된다. 최근 정부는 산업은행법 개정을 통해 40조원에 달하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했는데, 기간산업과 같은 공적 부문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규모·범위를 더 확대해도 좋다.

전후 세계경제는 1950·1960년대 '고성장'으로 비로소 대공황에서 회복했다. 뉴딜이나 나치의 국가 주도 경제정책을 통해서가 아니다.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 국제무역·금융질서가 안정화하고 1920·1930년대 경기하강기에 축적된 민간의 기술·혁신이 주효했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헌대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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