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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후배님 모십니다" 취업박람회 연 高卒신화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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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상고 졸업생이 세운 기업 26곳, 모교 찾아 高3 학생들 채용 나서

기업별 부스 만들어 1대1 면접

학생들 "훌륭한 선배들 닮고 싶어"

17일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덕수고 3층 강당에는 'BMW한독모터스' '㈜사강랩테크' 등 회사 이름이 붙어 있는 면접 부스 앞에 학생들이 길게 늘어섰다. 남학생들은 교복을 다려 입었고, 여학생들은 잔머리 한 올 없이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겼다. 학생들은 이력서를 들고 긴장한 얼굴이었다. 글로벌경영과 3학년 박서현(18)양은 "사무직에 취업하고 싶어 관련 자격증을 9개나 땄다. 백혈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한 경험을 살려 의료기기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이날 강당에서는 덕수고를 졸업한 선배들이 대표 등을 맡고 있는 26개의 기업이 참가한 특별한 취업 박람회가 열렸다. 차상록 교장은 개회사에서 "모교 선배들이 후배들을 직접 채용하러 온 뜻깊은 자리"라고 했다.

◇110년 명문 '덕수상고'도 취업난

"주변 어른들이 항상 좋은 학교 다닌다고 칭찬해주십니다. 존경하는 선배들의 길을 꼭 따라가고 싶습니다." 수입 자동차 판매 업체 부스에서 한 남학생이 긴장한 표정으로 30초짜리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한 기색이었다. 40년 전 졸업한 선배는 흐뭇하게 웃었다. "훌륭한 후배들에게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날 덕수고 특성화계 학생들 중 52명이 면접에 참가했다.

조선일보

17일 서울 성동구 덕수고 강당에서 열린 '덕수고 동문 기업 취업박람회'에서 덕수고 학생들이 취업 게시판에 붙어 있는 기업 모집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덕수고의 모태인 덕수상고를 졸업한 기업인 20여명이 후배들에게 취업 기회를 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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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고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연봉 2400만원 미만인 기업에는 학생들을 소개하지 않았다. 취업이 늦어져도 안정적인 중견기업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턴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면 연봉이 낮은 회사도 입사하도록 한다. 차상록 교장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급한 게 현실이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회사라면 일단 취업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지난해 이 학교 상업계 학생 206명 중 33명이 취업했다. 2016년 54명에 비해 줄어든 숫자다. 취업 대신 대학 진학을 택한 학생들도 많았다.

1910년 개교한 덕수고는 110년 전통의 명문 상고다. 금융계에서 '금융사관학교'라고 불렸고, 관계와 법조계에서 활약한 동문들도 많다. 2007년 덕수고로 이름을 바꾸고 일반계와 특성화계를 모두 운영 중이다. 특성화계는 2021학년도 신입생까지만 받고, 2024년 경기상고로 통합된다. 일반계는 송파구 위례신도시로 이전한다.

◇"선배들이 취업 박람회 열어줘 감사"

'동문기업 취업박람회'는 김효준(63회) BMW코리아 회장의 아이디어다. 지난 2월 졸업생 축사를 하러 왔다가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추진했다. 김 회장은 "특성화계 학생들이 모두 졸업할 때까지 매년 취업박람회를 크게 열어 후배들의 취업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했다. 이날 학생들은 자격증을 빼곡히 적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1명당 3~4곳 이상 면접을 봤다. 금융회계과 송인규(18)군은 회사 4곳에 지원했다. 송군은 "1학년 때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쪽을 생각했는데, 취업이 쉽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같은 과 임지윤(18)양도 "스펙이 좋은 친구들까지 불합격 소식을 듣는 걸 보며 안타까웠는데, 선배들이 이런 행사를 열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날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덕수고 동문(同門) 기업들은 30명 이상을 채용하겠다고 했다. 참가한 26개 기업이 1명 이상은 뽑겠다는 것이다. 1966년에 덕수상고를 졸업한 사강랩테크 김문일(73) 대표는 "요즘 어린 학생들은 진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면접해보니 내 생각이 잘못됐단 걸 알게 됐다. 다들 바로 채용해도 손색없겠다"고 했다.

[손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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