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5년 경제1 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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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일 비상 계엄 선포 이후 한 달 남짓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 경제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 속에 허덕이고 있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으며 실물 경제는 침체의 긴 터널의 입구에 접어들고 있다. 2023년 성장률(1.4%) 쇼크가 재현될 듯한 상황이다. 정부도 지난 2일 발표한 ‘2025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성장률을 1.8%로 제시했다. 경제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1% 성장을 한 건 2023년이 유일한 점을 떠올리면 올해 우리 경제가 비상한 국면을 맞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1%대 성장을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부과와 보호 무역주의 강화, 내수 부진 지속, 반도체 산업의 미약한 회복을 꼽았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비틀거리는 한국경제에 더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 준 ‘12.3 내란’ 의 경제적 영향은 정부 전망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 중반, 아니 그보다 더 낮은 성장률을 우리는 올해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정치 불안으로 소비 심리는 급격히 악화하고 있고 기업도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신용위험마저 높아지고 있는 탓에 기업 파산이 늘고, 고용 사정 역시 더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대외신인도 하락은 국가신용등급의 하향 조정 압력마저 높인다. 첩첩산중이다. 나는 이런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최소 25조원 이상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소한 대책으로 위기 돌파 역부족
여러 전망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12.3 내란’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0.5~1.0%포인트 정도 낮아질 것 같다. 정치 불안이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충격을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얘기다. 이런 위기감에 견줘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은 ‘소소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는 ‘가용 정책수단 총동원’, ‘국회·민간부문과 소통 협력 강화’ 등 말의 상찬만 가득하다. 정부의 경제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일 것이다.
내란 사태 이전에 한국 경제의 체력은 이미 허약해져 있었다. 수년간 감세정책만 내세우다 세입기반은 허물어졌다. 향후 복지수요와 고령화 등을 염두에 두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현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건전 재정’과 어울리지 않는 감세정책만 실시하였다. 나는 이를 ‘재정판 양두구육’이라고 부른다. 건전 재정을 앞세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으나 실제론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해쳤다는 뜻이다. 나아가 정부는 ‘건전 재정’을 강조한 이유 중 하나로 대외신인도 관리를 내세워왔다는 점도 기억하자. 하지만 이마저도 12.3 내란 사태가 수십 년간 쌓아 왔던 대외 신인도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국내외 신용평가기관들이 국가신용등급 조정 언급을 꺼내는 모양새가 심상찮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둘 때 정부가 준비 중인 대응책을 넘어서는 비상한 조처가 필요하다. 내란 사태가 불러올 경제적 충격을 완화해야 하며, 내란 사태 이전에 이미 취약해진 우리의 체질을 개선하고 파행을 빚은 재정 운용을 벌충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바로 추경 편성이다. 그것도 넉넉한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
“최소 25조8천억원 추경 편성해야”
추경은 과감해야 한다. 우선 지난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에서 감액된 예비비와 국채이자 등 2조9천억원 보전이 시작이다. 그다음은 내란 사태에 따른 성장률 충격을 보완할 수 있는 정도로 세출을 늘려야 한다. 우리 경제는 잠재성장률 대비 0.1%포인트 성장률이 하락할 때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약 2조3천억원 준다. 내란 충격으로 성장률이 최소 0.5%포인트, 최대 1.0%포인트 하락한다고 가정하면, 이에 따른 국내총생산 감소 규모는 ‘명목’(물가 반영) 기준으로 최소 12조9천억원, 최대 25조8천억원으로 시산된다. ‘재정승수’를 1로 가정한다면 경기 안정화를 위해 최소 12조9천억원 이상의 ‘세출 경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승수는 이에 미달할 것이기에 실제로는 내란 충격 보전 비용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다시 말해 세출 경정 규모 12조9천억원은 매우 보수적인 추정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올해도 상당한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규모 세입 경정(세수 전망을 낮추고 그 대신 국채 발행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2025년 국세수입 예산은 382조4천억원으로, 지난해 ‘수정 국세수입 전망값’(337조9천억원·지난해 10월 정부 재추계) 대비 13.2% 많다. 그런데 올해 정부가 전망한 경상성장률(3.8%)을 감안해 올해 국세수입을 추정하면 350조5천억원이다. 국세수입 예산(382조4천억원)보다 31조8천억원이 적다. 다시 말해 경상성장률만큼 국세수입이 늘어난다는 아주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전망을 할 경우에도 세수결손이 30조원 남짓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추정은 ‘12.3 내란’ 충격은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나는 최소 10조원 이상의 세입 경정은 해야 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추경 규모는 정부예산안 감액분 보전용 2조9천억원과 세출 확대를 위한 12조9천억원, 세입 경정용 10조원 등 모두 25조8천억원이다. 세출 확대용과 세입 경정용은 모두 ‘최소’치로 잡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의 대략 1% 정도다. 우리 경제가 어둠의 터널을 이제 막 들어서는 단계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정도의 비용을 들여 급격한 추락을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해야
정부와 여당은 연초부터 추경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이미 편성된 예산을 먼저 소진한 뒤에 경기를 봐가며 추경을 편성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상반기 재정집행률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추경 편성은 하루라도 빨라야 한다고 본다. 빨리할수록 연중 돈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어 부양 효과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예산안 수립부터 국회 승인에 이르기까지 1~2개월이 걸리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1951년 1월의 추경을 제외하고 지난 시절 가장 빨리 이루어진 추경은 2022년 1차 추경이다. 그해 1월24일 국회에 정부 추경안이 제출돼 2월21일 국회에 통과했다. 그다음으로 이뤄진 연초 추경은 2020년에 있었다. 3월5일 국회에 제출돼 3월17일 의결됐다. 두 번 모두 정부안 수립 시간까지 고려하면 추경예산 집행까지 걸린 시간은 약 두 달 남짓이다. 오늘 당장 정부가 추경 편성에 착수하더라도 실제 집행은 일러야 3월이다.
정치 일정도 고려해 봄직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어서 결론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고 뒤 이어질 대선을 염두에 두면 자칫 추경 편성이 하염없이 뒤로 미뤄질 수 있다. 그만큼 경제의 어려움은 길어지고 심화할 것이다. 추경이 늦어지면 또 예산당국이 지난 2년 동안 보여줬던 예산 불용과 대규모 세수 결손, 그에 따른 경기 악화 현상이 재현될 위험이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추경 편성을 서둘러야 한다.
끝으로 어떤 이들은 현재 추경을 편성하면 국가재정법이 정한 추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 추경 요건에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발생, 경기 침체·대량실업, 남북 관계 변화, 경제 위기 등만 포함돼 있다. 탄핵과 같은 정치 불안 그 자체는 추경 편성 요건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전이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현재의 정치 불안이 가져올 경제 하방 리스크가 지난 코로나19의 충격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대통령이 주도한 내란이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 속에서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전례 없는 상황에선 전례 없는 대응이 필요하다. 비상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한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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