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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트럼프처럼 복귀하겠다는 윤석열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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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체포영장 재집행을 앞두고 ‘도피설’까지 제기된 윤석열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왼쪽 셋째)이 8일 낮 경호원 등과 함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의 경비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이 오마이티브이(TV)에 포착됐다. 이곳은 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했을 때 3차 저지선이 구축된 곳이다. 오마이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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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 논설위원



한국 현대사 최악의 ‘빌런’이자 ‘공화국의 역적’으로 등극한 윤석열은 역설적 의미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입만 열면 강조하던 자유민주주의의 실체가 ‘박정희식 파시즘’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했고, 보수가 경제와 안보에 유능하다는 오랜 거짓말이 허구임을 입증했다. 우리가 알던 극우(조갑제·정규재)의 오른쪽에 더 극단적인 극우(슈퍼 울트라 라이트)가 있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의 주류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엘리트 관료들은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할 거라는 기대를 무너뜨렸고, 검찰이 공정하고 정의로울 거라는 착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환상을, 윤석열 본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일거에 척결했다”.



다만 이 오래된 착각 또는 환상의 몰락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검찰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사실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이미 확인된 바 있고, 보수가 경제에 무능하다는 것도 1997년 김영삼 정부의 국가부도 사태로 온 국민이 알았다. 보수는 안보에 유능한 게 아니라 ‘안보팔이 장사’에만 유능하다는 사실도 ‘총풍’을 비롯한 각종 ‘북풍’ 사건으로 폭로된 바 있다. (게다가 이번엔 남침을 유도해 전쟁을 일으키려다 실패했다!) 이들이 옹립한 대통령이 무능하고 게을러서 비선실세에 의존하다 파면당한 게 불과 8년 전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1년만 지나면 잊었다’(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국힘 의원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내란 수괴’ 방탄의원단을 자임하는 비밀이 여기 있다.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리더라도 조금만 참고 버티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믿음에는 실질적 근거가 있다.



이들의 자신감은 주류 의식에서 비롯한다. 대한민국을 세운 우파의 후예로서 나라의 골간을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재계와 법조계, 관료 조직과 언론, 검찰과 사법부, 사학을 비롯한 교육계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돈이 있는 곳일수록 세력이 강하다.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을 짓밟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을 비롯한 친위세력이 이 나라의 주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류여서 성공한다고 생각했고, 실패한 뒤에도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술에 취해서나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서가 아니다. 본인과 아내의 범죄를 영원히 덮을 해결책을 유튜브에서 발견했을 뿐이다. 극우 유튜브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지금 윤석열은 트럼프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트럼프는 4년 전인 2021년 1월 지지자들을 선동해서 폭력적으로 의회를 점거하게 했는데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주요 재판과 수사는 중단됐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다수파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케이(K) 트럼프’ 윤석열이 돌리는 희망회로는 입구부터 잘못됐다. 미국의 극우 트럼프와 한국의 극우 윤석열은 근본 바탕이 다르다. 트럼프가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에 야욕을 드러내며 깡패짓을 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트럼프의 이념은 순도 높은 자국이기주의다. 반면 윤석열의 극우는 소수 지배층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자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대주의와 자학적 세계관의 혼종 이념이다. 어찌 됐든 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와 소수 엘리트 및 광신적 반공주의자들만이 지지하는 윤석열의 차이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크다. 트럼프가 명실상부한 다수파 주류라면, 윤석열은 소수파 주류다.



그들은 여전히 한국의 지배세력이지만, 우파 엘리트와 대중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개인 미디어로 무장한 대중은 과거의 우매한 군중이 아니다. 더구나 윤석열 스스로 남긴 정치적 유산으로 괴리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12·3 계엄령 사태를 통한 2030세대의 정치적 각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탄핵소추로 중단되기 전, 한국갤럽의 마지막 대통령 지지율 조사인 지난해 12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3%, 30대는 6%였다. 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40대와 50대의 7%보다도 낮다.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뤄지던 날 광화문 거리를 걷다가 20대 여성 두명이 나누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이제 우리 저 사람들하고 싸워야 해.” ‘저 사람들’은 태극기(성조기) 부대였다. 그들의 예언대로 응원봉과 태극기는 지금 한남동에서 싸우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는 바뀌고 있고, ‘슈퍼 울트라 라이트’의 저항은 마지막 발악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의 역적이 남긴 더러운 유산을 치우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급하면 지는 것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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