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연무관에서 대통령 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경호 시범을 펼치고 있다. 2008년 9월6일. 한겨레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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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여러 대통령을 모신 동료들이 무수하게 많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호공무원은 대통령이라는 공인을 경호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된 개인을 경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1987~2012년 약 25년간 청와대에서 경호처 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성우 전 대통령경호처 안전본부장이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이다. 모두 6명의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지켰던 그는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펴낸 구술채록 자료집 ‘청와대로 출근한 사람들’에서 “대부분의 경호공무원이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호불호,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중립이 되어 임무를 수행한다”면서 공인으로서의 자세와 태도를 강조했다.
청와대 경호처의 역사를 만든 주역 중 한명인 그는 지난해 8월14일 박물관 학예실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반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경호의 의미와 구실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이 전 본부장은 대통령 경호처 업무 전반에 대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과 그에 따른 시행령 등 법령에 근거해 운영된다”면서 경호처의 업무에 관해 알려진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경호 업무를 두고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여러 기능이 조합되고 경험이 충분하게 축적되어야 경호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은 경호 업무라면 위기의 순간에 상대를 제압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경호 대상을 보호하는 이른바 ‘보디가드’를 떠올리곤 한다. 체력과 무도 실력이 출중한 이들을 위주로 고를 것이라 넘겨짚곤 하지만, 이 전 본부장은 경호공무원에게는 지덕체가 고루 강조된다고 증언했다.
저녁 나절의 청와대 본관. 지난 2022년 7월19일 열린 ‘청와대 한여름 밤의 산책’ 사전 언론공개 행사 때 공개된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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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제 임무를 수행할 때 요구되는 자세는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라며 20대 청년 시절부터 50대 중년까지 경호공무원으로 지낸 자신의 시간을 ‘충성’ ‘명예’ ‘헌신’으로 함축해 표현했다.
“충성, 명예, 헌신이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저는 지금도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안전하게 각자의 일을 하며 지내고 있는 거고요.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그것을 명예롭다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
구술채록집의 인터뷰는 청와대 조사·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이뤄졌다. 프로젝트를 주관한 박물관 조사연구과 쪽은 이 전 본부장을 포함해 청와대에서 요리·조경·운전 등의 업무를 맡았거나 취재를 전담했던 출입기자 등 모두 15명과 대면 인터뷰를 거듭하며 구술을 받아 청와대 역사 이면의 이야기들을 되살려냈다.
일례로, 1998∼2018년 청와대에서 대통령 식사를 책임진 천상현 요리사는 “대통령 입맛에 맞게 음식을 내기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정도를 해봐야 한다”는 체험담을 털어놓으며 “직업인으로서 대통령의 요리사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당시까지 남긴 글과 말을 수집해 파일을 만든 뒤 연설문 문구가 궁해질 때마다 보면서 글감을 구했다는 연설담당 비서관이나 자신을 ‘기동경호관’으로 여기며 운전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업무 수행에 전반적인 결을 맞추어 근무했다는 전용차 운전기사의 회고 등을 통해 이들이 대통령 못지않게 청와대에서 사람들의 역사를 만들어나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한수 관장은 발간사에서 “‘사람들’을 열쇠말 삼아 베일에 싸여 있던 청와대를 구술 기반으로 기록한 새로운 시도”라며 “향후 전시와 교육, 자료수집에 활용되어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청와대(로 출근한) 사람들’의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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