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14일(현지시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흘라잉타야 지역에서 쿠데타 규탄 시위대가 자신들이 손수 만든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채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날 하루 미얀마에서 시위 참가자 중 최소 38명이 군경의 발포로 사망한 가운데 양곤 내 흘라잉타야와 쉐삐따 등 인구 밀집지역 2곳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양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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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홍 | 부산외대 미얀마 특임교수(미얀마 거주)
미얀마에서 군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계엄령이 발동한 지 3년10개월에 접어드는 이곳 시민들은 아픔을 뒤로 한 채, 내전 소식과 국가보안법에 체포되는 사람들과 여전히 중무장한 군인들을 애써 외면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곳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뒤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던 지난 3일 밤 믿을 수 없는 영상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3년 전 미얀마의 최초 상황과 너무도 흡사한 한국의 비상계엄 발표. 당시 상황이 너무도 생생했기에 국회가 마비되고 국회의원들이 체포되면 끝이라는 직감은 마치 데자뷔를 겪는 것만 같았습니다. 유튜브에서 생중계되는 국회 상황을 보면서 마치 들리지 않는 유리창 너머 아우성을 치듯 댓글을 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서 빨리 제발….” 군인들이 진입하는 영상을 보니 피가 거꾸로 치솟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령 해제 의결이 통과되고 군인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보며 철렁했던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도 만약 국회 의결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3년 전 상상하기도 싫었던 미얀마의 악몽은 이번 사태 초기와 너무도 닮았기에 계엄의 공포를 알리고 싶습니다. 이번 계엄과 닮은 모습은 첫째, 내란 주체들의 거짓말입니다. 미얀마에서도 비상사태 선포 전에 이미 조짐이 있었지만 내란 주체는 특별담화를 통해 “거짓 선동이며 계엄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둘째, 국회를 해산시키려고 했습니다. 미얀마는 2021년 2월1일 새벽 중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봉쇄했고 체포조들은 민주 진영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주요 인사들을 체포, 구금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국회 해산이 성공했다면 미얀마가 겪었던 상황과 똑같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셋째, 내란의 주요 세력들은 “불법 총선”을 주장하며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구속 수감되며 자격이 박탈됐고, 일부 국회의원과 주요 인사들은 고문으로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넷째, 비상사태 선포 후 미얀마 시민들과 학생들과 공무원들도 광화문, 대학로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평화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전 세계 언론들도 미얀마의 제트(Z)세대를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2주 뒤 상황은 급속도로 반전됩니다. 이들을 에워싼 전투 경찰들은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으며 결국엔 이들을 향해 발포를 자행했습니다. 평화로웠던 시위 공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길거리엔 혈흔이 낭자하고 여기저기 시위대의 시신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후 전국적 항쟁이 이어지고 계엄군은 잔혹한 방법으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와 수류탄 발사기까지 사용했습니다.
3년이 흐른 지금, 미얀마에서 주요 외국 투자 기업들은 철수했고 환율은 3배 이상 올라 현지화 가치는 폭락하고 물가는 폭등했습니다. 시민들은 그날의 일들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한 채 쓴웃음만 지으며 살아갑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나라를 버리고 외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는 무장된 계엄령 차량들이 순찰을 다니고 있고 지방에서 저항하는 시민군들을 향해 계엄군은 전투기와 중화기를 사용하며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얀마의 계엄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거짓말은 “계엄령 선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정치범 지원협회의 자료에 의하면 미얀마 비상사태 이후 희생된 시민은 지금까지 6천여명, 감금된 인원은 2만여명이며 이 상황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이번 계엄령 상황은 두 나라가 너무도 닮았습니다. 12·3 내란사태가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한국의 미래는 미얀마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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