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해리스 지지하다 곤혹
트럼프 축하로 방향 틀었지만 늦어
노조 지도자 출신으로 2003~2010년 집권했던 그는 퇴임 후 자신과 측근의 비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선고 무효 판결을 받고 다시 대선에 출마해 보우소나루를 2022년 10월 꺾고 대통령직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와의 관계가 엇나갈 경우 혹독한 시련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틈을 노린 중국이 브라질과의 관계 강화로 중남미 세력 구축에 본격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8일부터 이틀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G20(20국) 정상회의를 마친 후 19일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 도착해 별도의 브라질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20일엔 환영연 등에서 룰라 대통령과 회동했다.
19일부터 브라질을 국빈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브라질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오른쪽은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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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나흘 앞둔 지난 1일 룰라는 프랑스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일에는 이 발언을 자신의 X 계정에 올렸다. 당시 쏟아졌던 여론조사의 판세는 트럼프에게 뒤처져 있던 해리스가 무섭게 치고 올라와 초박빙 구도를 이뤄 누가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빙이라던 선거가 트럼프의 압승으로 굳어지면서 룰라는 재빨리 트럼프 당선 축하 성명을 발표하고 트럼프와 통화를 하는 등 ‘태세 전환’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친분이 있는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도 “트럼프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진 뒤였다.
중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는 룰라는 이념 성향 때문에라도 트럼프와 가깝게 지내기는 쉽지 않다. 한편에선 재임 중 트럼프 1기를 겪지 않은 그가 반(反)트럼프 성향을 노골적으로 보였던 데는 정적 보우소나루와의 악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 출신이면서 극우 성향인 보우소나루는 ‘남미의 트럼프’라 불릴 정도로 트럼프와 각별하다. 보우소나루는 룰라가 이끄는 노동자당의 무능과 부패를 심판하겠다고 나서 2019년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2022년 선거에서 룰라에게 패배하자 선거 결과 승복을 거부해 이에 흥분한 지지자들이 몰려나와 폭동을 벌이는 등 트럼프와 정치적 궤적이 닮았다. 룰라는 트럼프에게서 보우소나루의 모습을 보고, 트럼프는 룰라를 보며 바이든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브라질이 미국에 대항하는 신흥국들의 경제협의체인 ‘브릭스(BRICS)’ 선도 국가라는 점도 트럼프 행정부와 상극이다. 룰라는 2009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 주석과 함께 주도적으로 브릭스를 창립한 인물이다.
룰라 정권은 ‘트럼프 2기’에서 정부효율부를 이끌 실세이자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도 사이가 나쁘다. 앞서 브라질 대법원은 4월 테슬라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X에 대해 가짜 뉴스를 방치한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했고, 8월엔 X의 운영 폐쇄 조치까지 내렸다. 지난 10월 머스크가 벌금을 내고 X 서비스를 복구하며 갈등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양측 사이는 불구대천 수준으로 벌어졌다. 룰라와 머스크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17일 벌어졌다. 이날 룰라의 배우자 호잔젤라 다시우바 여사가 소셜미디어의 거짓 정보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하다가 머스크를 겨냥해 ‘엿 먹어라’라고 욕설을 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X 계정에 웃는 이모티콘을 두 개 붙이면서 “그들은 다음 선거에서 질 것”이라고 조롱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트럼프가 취임 뒤 브라질에 대해 강력한 무역 제재를 펼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중국이 이 틈을 파고들고 브라질도 이를 반기는 모습이다. 브라질과 중국은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소고기·인공위성 등을 포함한 수십 개의 무역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다. 시진핑은 중국·브라질 수교 50주년 축전에서 “두 나라의 우정이 양쯔강과 아마존강처럼 끊임없이 흐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을 제치고 브라질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브라질과의 전방위적 협력을 통해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선 공약대로 중국산 제품에 60% 이상의 관세를 매길 경우, 브라질을 포함해 남미 시장을 대체재나 우회로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던 브라질 정부가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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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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