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살 때도 나는 데이먼이었다. 한국인이 영어 이름을 짓는 이유는 하나였다. 외국인이 발음하거나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도훈도 발음이 어렵지는 않다. 기억하기는 좀 힘들 수도 있다. 사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건 그들 몫이다. 한국인은 종종 지나치게 친절하다.
여전히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가 있다.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이유는 동일하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영어 이름까지는 낯간지러웠던 회사들은 호칭을 ‘님’으로 바꾸었다. CJ는 2000년도 직급 호칭을 버리고 ‘님’으로 통일했다.
두 회사 조직 문화가 수평적으로 바뀌었나? 요즘 두 회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자니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두 회사 직원을 친구로 두고 있다. 만나면 하는 소리는 다른 회사 직원과 다를 바가 없다. “빌어먹을 김 대표가 말이야”가 “빌어먹을 브라이언이 말이야”로 바뀌었을 뿐이다.
몇 년 전 인터넷 미디어를 창간할 때도 나는 데이먼이 될 뻔했다. 젊은 직원이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자 건의했다. 결국 무산됐다. “김도훈 편집장 저 새X 왜 저래?”에서 “데이먼 저 새X 왜 저래?”로 바뀐다고 조직이 수평적이 되는 건 아니다. 한국은 한국이다.
요즘은 영어 이름을 짓는 회사가 잘 없다. 다행이다. 20대 시절 좋아하던 유명인에서 따온 영어 이름은 40대쯤 상당히 민망해진다. 나는 데이먼이 아니었다면 옛 미국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에서 따 온 몽고메리가 됐을 것이다. 아직 전국 많은 스타트업 기업에 존재하는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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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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