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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광대는 변하면 안 뒤여~” 그 시절 마당놀이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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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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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모듬전’ 공연 중 악행을 일삼던 ‘놀보’(김종엽)가 들이닥친 저승사자들에게 깜짝 놀라는 장면.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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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14년 전이나 변한 것 없이 똑같구먼.” 윤문식(81)의 말을 김종엽(77)이 받았다. “예끼, 그럴 리가 있나. 그나저나 자네 싸가지 없기는 그 때나 똑같구먼.”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윤문식이 대꾸한다. “광대는 말여, 변하면 안 뒤여~.”

우리 고전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당놀이’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마당놀이 모듬전’ 공연이 열린 지난 31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오후 3시 공연인데도 가족 관객들로 북적였다. 돔 천장인 하늘극장 구조를 영리하게 활용해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도록 구성된 원형 무대 덕에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공터에 둘러앉은 듯 낯익고 정겹다.

지난해 11월 29일 개막해 한 달을 넘긴 이번 ‘마당놀이 모듬전’은 객석 800석이 평일 낮 공연도 평균 약 90% 정도 들어차고, 휴일엔 너끈히 매진이다. 예매자 연령대(국립극장 회원 기준)는 40대 이상이 77%에 달한다. 국립극장은 “온라인에선 확실히 ‘효도 구매’가 많고, 현장 매표소에서는 노년층의 직접 구매 비율도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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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모듬전' 공연은 관객도 함께 참여하는 고사로 문을 연다.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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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듬전’이라는 공연 제목 그대로, 그동안 마당놀이로 만나 우리 고전 속 이야기들을 한데 녹였다. 이몽룡이 춘향이 저고리 옷고름을 막 풀려 할 때면 심봉사가 “청아~” 부르며 나타나 훼방을 놓고, 저출산 시대에 분유 동냥으로 겨우겨우 자란 심청이가 밥 빌러 나서자마자 흥보네 자식들이 “밥! 밥!” 외치며 나타나 춤추고 노래 부른다. 놀보가 “형님, 라면이라도…” 구걸하는 흥보를 향해 뭉툭한 골프채를 휘두르고, 월매가 춘향이만 두고 한양 간다는 사위 몽룡을 향해 쌍절곤과 방앗공이를 날릴 땐 관객도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당놀이 인간문화재 3인방’이라 할 ‘심봉사’ 윤문식, ‘놀보’ 김종엽, ‘뺑덕’ 김성녀(74)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관객들은 반가워하며 환호했다. 여기에 민은경·이소연·김준수·유태평양·조유아 등 요즘 아이돌급 인기의 국립창극단 스타 배우들과, 정보권·이재현·송나영·백나현 등 젊은 소리꾼들이 몽룡, 춘향, 월매, 변학도, 심청, 흥보 같은 주요 배역을 맡아 생생한 활기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무대와 관객 반응을 즐기는 패기, 마당놀이를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재적 장르로 되살리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젊은 소리꾼 배우들이 단단하게 짜여진 창극의 틀에서 벗어나 관객의 반응을 즐기며 흥겹게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번 마당놀이 공연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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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모듬전'의 '심봉사' 윤문식(오른쪽)과 '뺑덕' 김성녀 배우.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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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를 현재의 모습으로 되살려낸 주역은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77) 연출가와 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김성녀 배우 부부가 함께 이끈 ‘극단 미추’였다. 지난 2010년까지 30여 년간 전국을 돌며 3000회 이상 공연돼 약 250만명이 관람하는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30주년 기념 공연인 ‘마당놀이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2014년 국립극장 기획공연으로 되살리기도 했다. 이번 ‘마당놀이 모듬전’에는 과거 마당놀이 부흥에 뜻을 모았던 한국무용가 국수호, 국악 작곡가 박범훈, 극작가 배삼식 등 최고의 창작진이 다시 뭉쳤다.

개막 전 기자 간담회에서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국악을 정체성으로 현재적 창작을 하는 것이 국립극장의 숙제인데, 마당놀이야말로 우리 정체성을 갖고 많은 관객이 소통하고 사랑받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손진책 연출가는 “제목 ‘모듬전’에는 고전을 모았다는 뜻도 있지만, 분열의 시대에 마음을 모아 보자, 신·구 세대가 함께 모여 보자는 뜻도 담았다”고 했다.

공연은 30일까지, 전석 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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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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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모듬전'에서 '흥보'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의 스타 소리꾼 배우 유태평양.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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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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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중 '춘향전' 속 '몽룡'(김준수)과 '춘향'(이소연)의 밀회 장소로 '심청전'의 '심봉사'(윤문식)가 난입(?)하는 장면. 민은경, 김준수, 이소연, 유태평양, 조유아 등 국립창극단의 스타 소리꾼 배우들이 단단하게 짜여진 창극의 틀에서 벗어나 관객의 반응을 즐기며 흥겹게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번 마당놀이 공연의 묘미다.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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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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