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꼬맹이가 용기가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린가 싶어 “너 용기가 뭔 줄 알아?” 물어봤다. 딸이 답했다. “용기? 친구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여섯 살짜리가 생각하는 용기가 이렇게나 멋지다니.
그동안 ‘용기’라는 건,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불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마음이나 뜨거운 불 속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 수 있는 마음처럼 엄청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친구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게 용기라니. 딸이지만 한 수 배웠다.
어른이 되면 ‘용기’가 없어진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릴 때는 나 혼자만 생각하고, 앞뒤 가릴 것 없다고 생각하니까 어디든 뛰어들 수 있고, 어디든 끼어들 수 있는 용기가 있지만, 나이 들어 결혼을 하고 나면 처자식도 있고 내 몸이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기에 몸을 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용기라는 단어가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 있는 행동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으며 두루뭉술하게 살아가기를 택한 어른이 많아진 것 같다. 물론 나도 요즘은 용기라는 단어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득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에게 다시 묻고 싶어졌다. 요즘 열일곱 살이 생각하는 용기란 무엇일까? 어릴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고 딸에게 다시 물어봤다. “딸, 용기가 뭐라고 생각해?” “음… 해본 적 없는 걸 해보려는 마음?”
그래 거창한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작은 마음이라도 작은 일이라도, 변화시킬 의지가 있고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용기 아닐까?
[이재국·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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