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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부친상 문자 눌렀다가… 나도 지인도 다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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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끼 문자 124만건… 개인정보 유출, 지인에 추가 피해도

조선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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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해킹당해 스팸 문자가 발송됐습니다. 제발 누르지 말아주세요.”

직장인 안모(39)씨는 최근 이런 문자메시지를 휴대전화 주소록에 저장된 지인 400여 명에게 하나하나 보냈다. 안씨 휴대전화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부고장 사칭 ‘미끼 문자’가 일괄 발송됐기 때문이다. 안씨는 “동료 직장인 이름으로 서울 유명 병원에 빈소가 있다는 부고 문자가 왔길래 의심 없이 링크를 눌렀다가 순식간에 악성 앱이 설치됐고 곧바로 해킹됐다”고 했다. 이후 안씨는 신용카드 사용을 정지하고 대출 계좌를 동결하는 등 조치를 취한 뒤 휴대전화를 아예 초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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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지인이 보내는 부고장·청첩장 등을 사칭해 지인의 휴대전화를 해킹하는 악성 미끼 문자가 올해 24만건(올해 1~9월·전체 124만건) 적발됐다고 경찰청·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15일 밝혔다. 미끼 문자에 있는 링크를 누르면 악성 앱이 설치되고, 휴대전화 내 연락처, 통화 목록, 사진첩 등 모든 개인·금융 정보가 빠져나간다. 당장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이용해 휴대전화 소액 결제나 은행 앱을 통한 계좌이체 등 피해가 발생한다.

이렇게 악성 앱에 감염된 폰을 ‘좀비 폰’이라고 부른다. 범죄자들은 이런 좀비 폰 주소록에 있는 지인들에게 대량의 미끼 문자를 유포한다. 모르는 번호가 아닌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가 부고장·청첩장에 적혀 있어 별다른 의심 없이 문자 속에 있는 링크를 눌렀다가 피해를 당한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모바일 청첩장, 많이 와주세요’ 같은 식이다.

범죄자들은 단순 미끼 문자를 유포할 뿐 아니라, 아예 원격조종 기술을 통해 막역하다고 판단되는 지인에게 말을 걸어 직접 금전을 갈취하기도 한다. 30대 남성 A씨는 최근 친한 학교 선배 B씨에게 “거래처에 물품 대금을 보내는데 1일 이체한도를 초과해서 돈이 부족하다”며 “1000만원을 거래처에 보내주면 내일 바로 갚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 선배 B씨의 말투 그대로여서 A씨는 1000만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다음 날 선배 B씨가 “누가 내 명의를 도용해 돈을 빌려달라고 다닌다니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제야 A씨는 사기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미끼 문자 범죄를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친하게 지내던 선배한테 메시지가 원래 나누던 대화창에서 오니 꼼짝없이 속았다”고 했다. KISA는 “범죄자들이 기존 대화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 지인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접근하기 때문에 의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성규


지인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공공기관의 범칙금 부과 통지서를 사칭하는 유형도 있다. ‘쓰레기 분리 위반 대상으로 민원이 신고돼 안내 드린다’ 같은 문자다. ‘고객님 택배 배송 주소 불일치로 물품이 취소됐다’ 같은 택배 사칭형 피해도 상당수다.

정부는 이런 미끼 문자 사기를 예방하려면 V3·알약·모바일가드 등 모바일 백신 프로그램을 실행해 수시로 보안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이 함부로 설치되지 않도록 스마트폰 보안 설정을 하고(보안 위험 자동 차단 활성화) 대화 상대방이 개인·금융 정보 또는 금전을 요구하거나 앱 설치를 요구하면 반드시 전화나 영상 통화 등으로 상대방을 정확히 확인하는 편이 좋다.

개인·금융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스마트폰에 신분증 사진이나 계좌·비밀번호 등을 저장해두지 않아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초기 악성 앱은 정보를 탈취하는 기능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원격조종하는 기능까지 추가될 정도로 진화했다”며 “좀비 폰 상태로 남아 있으면 범인들이 언제든지 조종해 가족·지인에게까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휴대전화 보안 상태 점검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했다.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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