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아무 일 안 하던 공수처
대통령 수사에 목숨 건 이유
일러스트=유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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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근조 화환이 배달됐다. 리본에 적힌, ‘대통령 체포를 검찰한테 뺏길 거냐’는 메시지에서 보듯, 대통령 수사를 놓고 검찰과 경찰, 공수처 등 수사기관끼리 경쟁이 붙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중 가장 돋보이는 기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세칭 공수처다.
공수처는 좌파의 오랜 꿈이 집약된 기관. 그들의 망상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뇌물 때문이 아닌, 검찰의 조작 수사 때문에 사망했고, 한명숙 전 총리는 검찰이 감방 죄수들을 회유한 탓에 뇌물범이 됐으며, 최근 입시 비리범으로 확정된 조국은 검찰의 먼지 털기 수사에 당한 희생양이었다. 그래서 좌파는 검찰을 견제할 기관을 꿈꿨고,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을 미끼로 군소 야당을 회유한 끝에 2021년 1월 공수처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공수처는 그 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연간 예산을 200억원이나 배정받으면서도 출범 후 3년간 유죄판결을 단 한 건도 끌어내지 못했고, 다섯 번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모두 기각당했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은 손준성 검사장도 이달 초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여기에 관해 공수처는 ‘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변명한다. 공수처에서 근무 중인 검사가 15명에 불과하니 부족해 보이기는 한데, 규모가 비슷한 검찰 지청의 실적과 비교해 보면 공수처가 유난히 일을 더 못한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공수처의 중립성도 논란이 됐다. 초기 수사의 절반가량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관련 사건에 집중된 것도 수상하고, 문재인 정부 실세였던 이성윤 당시 중앙지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용차를 제공해 ‘황제 의전’ 논란을 빚은 적도 있는 데다, 국민의힘 인사와 언론인의 통신 자료를 광범위하게 들여다본 게 드러나 비판받기도 했다.
이랬던 공수처가 뭔가 일하는 모습을 보인 건 올해 총선 즈음이 최초였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24년 3월 5일, 대통령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이종섭은 채 상병 사건에 외압을 행사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였지만, 각종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그가 공직을 맡는 게 아주 이례적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종섭은 장관 시절 국산 장갑차를 호주에 판매하는 데 한몫했으니, 방산 추가 수출을 위한 인사라는 설명도 수긍이 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MBC는 공수처가 올해 1월부터 이종섭을 출국 금지시킨 상태라는 사실을 보도한다. 대통령실은 출국 금지 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했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켜 수사를 방해한 것’ ‘국가 망신이고 외교적 결례’라며 거품을 물었고,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건의 몸통임을 인정했다’고까지 얘기했다. 그 뒤 정부가 출국 금지를 해제하고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는 바람에 여론이 악화됐고, 이는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배하게 만든 대표적 사건이 됐다.
기이한 것은 공수처의 태도. 출국 금지까지 할 정도면 피의자 조사를 해야 하건만, 공수처는 3월의 자진 출두 후 약식 조사를 제외하면 단 한 차례도 이종섭을 소환하지 않았다. 혹시 출국 금지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느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 게다가 MBC에 수사상 기밀인 출국 금지 사실을 알려준 게 공수처일 거라는 의혹도 나온다. 그래서 이종배 서울시 의원은 “최초 보도한 MBC에서 ‘공수처로부터 확인했다’고 했으니 공수처 관계자에게 그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성명 불상 공수처 관계자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법률대리인 김재훈 변호사가 3월 27일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수사 촉구 및 법리 해석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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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공수처는 원래 모습, 즉 아무 일도 안 하는 상태로 돌아갔다. 그래도 올해는 뭐라도 한 건 했으니, 이전 3년보다는 좀 떳떳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2024년이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건이 터졌다. 그때였다. 공수처가 기관의 운명을 걸 정도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첫째, 공수처에 고발이 쏟아졌다. 경찰력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했다는 이유로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이 공수처에 고발됐고, 군 인권 단체를 비롯한 시민 단체는 윤 대통령,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을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는 등 비상계엄 관련 고발이 쏟아졌다.
둘째, 여건도 공수처에 유리하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할 수 있지만, 경찰청장 등 관계자가 고발당한 상태라 이해 충돌 여지가 있다. 검찰은 ‘우리도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정국을 주도하는 민주당이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바로 검찰이다. 예컨대 김용민 의원은 “검찰은 윤 대통령과 함께 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공범으로, 그 공범이 갑자기 내란 수사를 하면서 구국의 영웅인 척하지 말길 바란다”며 검찰을 공격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지원에 자신감을 얻어서 그럴까. 공수처는 “중복 수사 우려를 해소하자”며 검찰과 경찰에 사건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더니, 결국 검찰만 빼고 경찰과 공조수사본부를 만든다. 최근엔 검찰로부터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 사건을 이첩받는 데 성공했으니,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셋째, 공수처만의 특기도 살리는 중이다. 이종섭 사건에서 보듯이 출국 금지는 공수처의 특기. 이번 사건에서도 공수처는 12월 9일 오후 3시, 가장 먼저 윤 대통령의 출국 금지를 신청했고, 법무부 승인을 얻어냈다. 현직 대통령의 출국 금지는 헌정 사상 최초, 중대 범죄자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에겐 아직 출국 금지가 선포되지 않은 걸 보면, 대한민국은 야당 대표보다 대통령의 해외 도주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가 보다. 심지어 공수처장은 국회 법사위에 나가 “상황이 되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긴급 체포를 시도하겠다”고 답했으니, 공수처를 만든 분들은 작금의 활약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음과 같은 우려가 제기될 것이다. 그동안 공수처가 일을 안 한 이유가 인력 부족이었다는데, 내란죄 같은 큰 사건을 맡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기에 관해 공수처는 이렇게 답변한다. “소속 검사 15명과 수사관 36명 등 인력 전원을 투입하겠다!” 지지부진했던 채 상병 외압 수사는 당분간 중단한다는데, 이런 공수처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덕담을 건넨다. ‘썩은 고기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없으면, 공수처를 보라.’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첩한다. 대검찰청은 18일 공수처와 중복수사 방지 방안을 포함한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청과 관련해 협의를 진행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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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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