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노벨문학상 한강과 함께
‘올해의 작가’ 된 고명환
개그맨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고명환은 “책은 인간이 스스로 질문하게 함으로써 인생의 답을 찾게 해준다”고 했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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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한강과 나란히 뽑힌 올해의 작가가 고명환(52)씨라니. 의아한 일이었다. 여전히 그를 개그맨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고명환은 에세이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로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출간되자마자 교보·예스24 등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린 책. 교보문고는 “고명환 작가는 독서를 통해 인생을 바꿨고, 그 과정을 진솔하게 써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연예계에 소문난 애독가인 그는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등 책에 대한 책을 꾸준히 내왔다. 전국으로 불려 다니며 “책 속에 인생의 답이 있고 돈이 있고 성공이 있다”며 독서를 예찬하는 일타 강사이기도 하다.
개그맨으로 인기를 얻고 드라마·영화·연극 배우로도 활동하던 그가 책에 빠진 계기는 뜻밖에도 대형 교통사고였다.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그에게 의사가 한 말은 “사흘 안에 죽으니 유언부터 남기라”였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34년을 시키는 대로만 하며 살았다는 걸 죽음 앞에서야 깨달았다”며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하다 책에서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팔려는 의도 뺐더니 팔리더라
-무려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함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습니다.
“한강 작가와 제 사진이 나란히 실린 기사를 보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상을 받으니 부담감이 밀려오네요. ‘잘 써야 한다’는 의도를 갖지 않아야 하는데….”
-힘을 빼야 하는데 자꾸 힘이 들어간다는 말씀이죠?
“잘 팔리게 써야겠다는 의도가 없는 책이 역설적으로 잘 팔리더라고요.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속셈이 뻔해 보이잖아요.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는 진짜 의도를 제일 많이 뺐어요. 교보에서 처음에 ‘왜 이렇게 제목이 기냐’고 했어요. 그런데 그 책이 제일 빨리, 제일 많이 팔렸지요.”
-의도를 버리기가 쉽지 않지요.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융은 ‘레드 북(Red Book)’에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의도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고 했지요. 이게 돈을 좇지 말란 말이지. 축구 감독이 시합 전 선수들에게 뭐라고 해요? 즐기자! 이게 의도를 갖지 말자는 거거든요. 우승하려고 하면 안 돼요. 몸이 뻣뻣해지고 경기가 풀리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나요.
“싫어하진 않았어요. 어릴 때는 집에 세계 문학 전집이 하나씩 있었잖아요. 꺼내보지도 않는 친구가 많았죠. 저도 끝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틈 나면 여기저기 펼쳐 보기는 했어요. 그래서 교통사고 나고서 책을 집어 들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면서 어떻게 전집을?
“전집 파는 분이 엄마 친구였어요. 엄마한테 ‘60개월이든 10년이든 돈 될 때 내라’고 말하고는 전집을 던져놓고 가셨어요.”
-원래는 수줍고 소심한 성격이었다면서요.
“제가 고교 1학년 때 빚 보증으로 집이 망했어요. 어머니가 빚쟁이들을 피해 야반도주하셨죠. 그해 겨울에 친구네 목욕탕 연탄을 훔쳤어요. 단칸방에서 누나와 저 둘이서 냉골에서 자야 했거든요. 빚쟁이들이 찾아와 ‘엄마 어디 갔어?’ 하며 누나 머리끄덩이를 잡았지요. 제가 부엌에 있던 식칼을 양손에 들고 나와서 ‘다 죽여버리겠다’며 덤볐어요. 그때 성격이 바뀌고 강해졌어요.”
-개그맨은 어떻게 됐나요.
“방위병으로 군 복무할 때였어요. 같은 사단에 있던 홍석천 형이 연극영화과 출신 신병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했어요. ‘문선대 하겠느냐’ 묻더라고요. 바로 문선대 가서 석천이 형과 개그 콩트를 했어요. 형이 짜고 저는 시키는 대로.”
-그때 소질을 발견했군요.
“정극 배우가 되고 싶었고 개그맨은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가 너무 웃긴다는 거예요. 제대하고 복학하려는데 등록금 200만원이 없었어요. 마침 1994년 KBS 대학 개그제가 열리는데 대상 상금이 200만원이래요. 무슨 계시 같았죠. 대상은 못 받고 금상 받았지만, 그 길로 개그맨이 됐어요.”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 올해의 작가상을 들고 있는 고명환.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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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끌려다니던 낙타의 삶
고명환은 1997년 MBC 공채 개그맨에 합격했다. MBC 코미디하우스 ‘와룡봉추’ 코너로 큰 인기를 얻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정극 연기에도 도전했다. 영화 ‘두사부일체’와 드라마 ‘로망스’ ‘해신’ 등에 출연했고, 연극·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2005년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생 경로가 완전히 바뀐다.
-당시 한 달 3000만원을 벌었다고요?
“저와 박명수, 홍록기, 조혜련, 문천식, 김한석이 MBC 쪽에서 밤무대 서던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노을을 제일 싫어했어요. 해가 지면 방송국에서 밤무대로 출발했거든요. 하루 230km, 일주일에 엿새를 뛰었어요. 안산~인천~의정부~수원~서울 강남까지 하룻밤에 네댓 업소를 돌았어요. 제가 매우 긍정적인 성격인데도 해가 지면 우울해지더라고요.”
'복면가왕' 회식의 신 탬버린 고명환 /MBC |
-그 생활을 어떻게 견뎠나요.
“아파트 중도금 내려고 버텼어요. 나중에 행복한 날이 있을 줄 알고 참고 살았어요. 매일 두 시간 반만 자면서. 달랑 300만원 들고 상경해 7년 만에 집 두 채 사려면 그렇게 일해야 돼요. 언젠가 행복한 날을 누리려고 이 악물고 끌려다니듯 밤무대를 돌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눈을 떴더니 글쎄, 사흘 뒤에 죽는대! 정말 신(神)한테 어이가 없더라고요.”
-교통사고가 얼마나 심각했길래.
“뇌출혈에 눈 한쪽이 마비되고 폐에도 절반쯤 피가 차 있었어요. 진짜 치명적인 건 심장에 있는 주먹만 한 핏덩어리란 거예요. 정신이 돌아오니 의사 선생님이 ‘유언부터 하고 정리할 거 정리하라’더군요. 우리나라 최고 심장 권위자인 삼성의료원(삼성서울병원) 교수님인데, ‘이거보다 핏덩어리가 작았던 사람도 다 사망했다’는 거예요.”
-그때 기분은.
“억울했어요. 개그맨으로서 하고 싶은 코미디가 있었어요. 하지만 방송국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어요. 니체는 인간의 성장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로 구분했죠. 죽음 앞에 서보니 저는 낙타였어요. 무슨 짐인지도 모르고 실으라면 싣고 끌고 가라면 끌고 가는.”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핏덩어리가 일주일 지나면서 작아지기 시작했어요. 다 사라졌지요. 병원에서 기적이라고 했어요.”
-중환자실에서 책은 왜 읽었나요.
“만약 살아난다면 세상에 끌려다니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방법을 모르겠는 거예요. 지인들한테 ‘병문안 올 때 주스나 과일 대신 책을 사다 달라’고 했죠.”
-어째서 누구나 알 만한, 제목을 들어본 것 같은 책이었나요.
“책을 고를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유명한 책은 적어도 50점 이상은 되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있었어요.”
-얼마나 읽었나요.
“하루 18시간도 읽었어요. 누군가 ‘고통은 신선할 때만 고통이다’ 했는데, 이 말이 너무 좋아요. 처음에는 한쪽 눈으로 읽으려니 엄청 답답하더라고요. 이틀 지나니까 불편하지 않아요. ‘노인과 바다’ ‘데미안’ ‘죄와 벌’ 등을 그때 읽었어요. 끌려다니며 살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 올해의 작가상 수상 후 강연하는 고명환 작가. /교보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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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인생의 답을 주는 방법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고명환은 간절하게 책을 읽었다. 독서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외식 사업가와 작가, 강사로서 성공의 열쇠도 책에서 찾았다. 그는 “책과 독서는 여전히 내 삶의 중심”이라며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책은 무조건 읽는다”고 했다.
-하루에 얼마나 읽나요.
“최소 1권, 10쪽은 읽어요. 오전 11시 메밀국숫집 출근하기 전 남산도서관 들러 읽고 장사하고 귀가하다 다시 들러 읽어요. 남산도서관이 밤 10시에 닫는데, 9시 40분에 들어간 적도 있어요. 20분 읽고 나와도 기분이 너무 좋아요.”
-고작 20분이면 집에서 읽으면 안 되나요.
“아내도 ‘왜 꼭 도서관 가서 읽어야 하느냐’고 물어요. 도서관 오는 분들은 성장하려고 오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분들의 에너지·파장이 서로 만나 중첩돼 10배, 100배가 돼요. 도서관은 긍정 에너지의 불덩어리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훨씬 잘 읽히고 깨달음도 많았어요. 똑같이 1시간을 읽어도 집과는 효과가 너무 달라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니체가 낙타~사자~어린아이로 구분한 인간 성장 단계를 독서에 적용했어요. 낙타는 시키는 대로 짐을 지고 걸어갑니다. 낙타의 독서는 유명한 책, 베스트셀러 위주입니다. 사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냥합니다. 어슬렁어슬렁 다니면서 내 입맛에 맞는 책, 내가 가치를 부여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사자의 독서죠. 어린아이의 독서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책을 읽어서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독서 자체가 즐거운 거죠. 분량에 집착하지도 않아요. 독서가 즐거움으로 느껴지면 그 사람 인생은 완성됐다고 봅니다.”
-책이 어떻게 인생의 답을 주었나요.
“책은 질문하게 합니다. 인간은 인생에 무조건 한 번은 ‘책 읽어볼까’ 하는 때가 옵니다. 어디서도 답을 찾지 못하니 최후 수단으로 책을 보게 됩니다. 그런 때가 무조건 한 번은 옵니다, 굉장히 진하게. 그 답을 찾으려면 반드시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유튜브를 보면 질문이 안 생기나요.
“안 생겨요. 유튜브는 설명해 주잖아요. 강연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러분이 제 강의를 들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방향을 제시해 줄 뿐입니다’라고 말해요. 소크라테스가 왜 질문만 던졌겠어요? 아무리 설명해 줘도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예요.”
-특히 고전을 권하는 이유라면.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을 보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질문하게 만들죠. 압축·상징·은유가 많기에 누구에게나 맞는 답이 나올 수 있어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 ‘서시’)에서 우리 민족은 연인과 헤어진 사람도, 장사하다가 힘든 사람도 자기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책 읽는 습관을 가지길 바라는 부모가 많은데.
“억지로 읽으라고 하면 역효과 나요. 책과 친해지게만 하세요. 놀이 삼아 온 가족이 벌금 제도를 만들어도 괜찮아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핸드폰 잡는 사람은 벌금 1000원, 일어나면 무조건 1분만 아무 데나 펼쳐서 한 줄만 읽어주기. 일주일에 두세 번만이라도. 단 1년은 해야 루틴으로 자리 잡죠. 이렇게만 해도 때가 왔을 때 수월하게 책을 찾게 됩니다. 제가 그 증거예요.”
-반드시 종이책이라야 하나요.
“전자책도 상관 없어요.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는 종이책이 뇌에 훨씬 더 각인되긴 하죠. 작게 소리 내 읽으면 더 효과적이고요. 나의 뇌가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 책 익숙한 사람’이라고 인지하도록요.”
-AI 시대에 책, 고전이 유효할까요.
“챗GPT한테 멍청한 질문을 던지면 멍청한 대답이 나오잖아요. 명쾌하게 단문으로 핵심을 꽝 찌를 수 있어야 해요. 독서를 하면 나도 모르게 좋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AI 시대에 책이 더 유용한 이유죠.”
고명환이 쓴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라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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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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