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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2030 플라자] 구십대 할머니의 부러진 고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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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서 넘어진 할머니, “폐 안끼치고 죽겠다”며 수술 거부

하지만 사람은 쉽게 안죽고 그러면 자식들이 대소변 수발해야

의사와 환자의 딜레마…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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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 대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어 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가족들과 함께 카트에 실려 온 할머니는 오른쪽 골반을 아파했다. 오른쪽 다리를 살짝 드는 것만으로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흔하게 발생하는 고관절 골절이었다. 할머니는 곧 엑스레이 촬영실로 향했다.

뼈는 외력에 저항한다. 그중 체중이 많이 실리는 고관절은 가장 단단하므로 보통 넘어져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뼈의 강도가 빠져나간다. 노인이 집에서 조심스럽게 생활해도 근육의 힘이 약해지면 점차 서 있기가 어려워진다. 서 있는 상태에서 넘어지면 외력은 대부분 고관절에 쏠린다. 그런데 고관절은 옆쪽에서 가해지는 외력에는 약하다. 노년에는 생리적으로 고관절 골절이 흔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오른쪽 대퇴골은 두 조각이 났다. 나는 수술을 권하러 갔다. 할머니는 구십 대 중반이었지만 치매 없이 의식이 또렷했다. 고혈압 외에 지병도 없었고 화장실에 스스로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수술을 거부했다. 고관절은 보행과 직결된다. 대퇴골이 부러진 채로 아물면 걸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자리보전하면 만병이 시작된다. 특히 폐렴, 욕창, 혈전, 심장병 등 생의 마지막 주기에 발생하는 모든 합병증에 노출된다. 고령의 환자에게도 고관절 수술을 권하는 이유였다.

“환자분. 이건 단순히 뼈를 맞추는 게 아니에요. 이제 못 걷는다고요. 각종 합병증으로 1년 내 30%, 2년 내 70%까지 사망해요.”

“잘됐네요. 오래 살았으니까 이제 죽으려고요.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들이 힘들었어요. 더 산다고 수술까지 받으면 자식들 고생해요. 이번 기회에 폐 안 끼치고 가려고요.”

할머니는 완강했다. 갑자기 큰 수술을 받는 게 꺼림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자는 명백히 자신의 의지가 있었고 수술을 거부하는 근거가 명확했다. 가족들의 충고도 할머니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지나가던 주임 교수님이 환자에 대해 물었다.

“이 환자는 무슨 일인가?”

“병력은 없으신데, 수술을 거부하고 계십니다.”

“안 되지. 내가 가서 잠깐 얘기를 좀 해야겠다.”

교수님은 얼마 전 투병하던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복귀한 참이었다. 나는 교수님을 따라 환자에게로 갔다.

“환자분. 수술받아야 해요.”

“안 받아요.”

“얼마 전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사람 쉽게 안 죽어요. 생각보다 오래 누워 있어야 해요. 그런데 못 걸으면 할머니 자녀들이 대소변 받아야 해요. 자녀분들 손에 매일 대소변 묻히고 싶으신가요? 그게 어르신 원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병 수발 시키면 다 자식들 짐이에요. 인생 많이 남았으니까 수술받고 조금이라도 걸으세요.”

할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장 대답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현실적인 조언에 직면하자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잠시 뒤, 환자가 수술을 수락했다고 했다. 그의 아들과 잠시 면담했다. “수술받겠다고 한마디 하시곤 말이 없으세요.” 우리는 응급 수술을 준비했고 환자는 곧 수술방으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고관절이 맞춰진 채로 잠에서 깰 것이다. 그 뒤의 운명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대퇴골은 올바른 방향으로 붙기 시작할 것이다. 할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는 또다시 목표가 생겼고 삶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필요해졌다.

나는 수술 중인 명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환자는 모두가 같지 않다. 각자에겐 사연이 있고 삶의 철학이 있다. 그런데 조언을 주는 사람조차 같지 않다. 개인적 서사에 따라 미래를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이 교차하면서 내리는 결정은 항상 정답이 아닐 것이다. 순응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늘 모른다. 그럼에도 할머니에게는 다시 스스로 두 발을 딛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그것은 적어도 의사가 환자에게 주어야만 하는 종류의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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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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