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문서의 유출과 대외 공개는 심각한 보안 위반으로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충격적인 것은 그 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위한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를 1주일 앞두고 외교부가 BIE 회원국 주재 공관에 보낸 문서인데, 당시 우리 정부가 유치전 막판까지 얼마나 오판에 근거한 낙관론에 젖어 국민과 여론을 호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서에는 ‘1차 투표에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며 2차 투표에서 한국이 과반을 득표해 유치에 성공할 것’ ‘사우디아라비아의 120표 이상 확보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투표 직전까지도 “사우디와 박빙 승부다” “2차 투표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것도 유치전 독려 차원의 사기 진작용이 아닌 이런 판세 정보에 근거했던 셈이다. 하지만 실제 투표 결과는 사우디가 119표를 얻어 부산(29표)을 압도했다. 사우디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 득표는 국민적 허탈감을 넘어 국가적 망신살 수준이었다.
이런 참혹한 결과가 나온 뒤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저의 부족 탓”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막대한 외교력과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한 엑스포 유치 실패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당시 외교부 장관과 대통령실 담당 기획관이 여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당장 기밀문서 유출에 엄정 대처하겠다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유치 전략과 추진 과정, 처참했던 상황 판단에 대한 정부 차원의 냉정한 평가와 반성일 것이다. 그런 복기를 위해선 정부 비밀문서란 게 ‘밖에 알려지면 창피한 정부의 무능’을 감추는 수단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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