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내 사랑. 내일 만나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 77년을 함께한 부인 로절린 여사를 먼저 보내며 이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시 99세의 카터는 오랜 암 투병 끝에 1년 가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내일 만나자’는 말처럼 카터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1년을 더 살았다. 100번째 생일까지 보내고 29일 부인의 뒤를 따랐다. 미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이다.
▷카터가 대통령에 오른 1976년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 장기화로 정부 불신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조지아주 주지사(민주당)로 중앙 정치에선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동 불안을 관리하지 못해 오일 쇼크가 생기며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번졌다. 취임 전 6%대이던 물가 상승률이 13%까지 올랐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세력이 미 대사관을 점령해 미국인 52명을 400일 넘게 억류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겹쳤다. 결국 로널드 레이건에게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무능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던 카터지만 퇴임 후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불렸다. 프리랜서 외교관으로 쿠바, 보스니아 등 세계를 누비며 평화 중재자로 활약했다. 북핵 위기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고조되던 1994년 북한을 방문해 북핵 동결을 이끌어내는 등 분쟁 해결에 힘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서민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에도 몸소 참여해 90대가 돼서도 공구를 들고 현장을 오갔다. 정치엔 실패했을지 몰라도 지도자로선 성공한 삶이었다.
▷미국인들은 카터에 대해 아무리 불리한 상황도 정직하게 해결하려 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지지율이 저조하던 집권 3년 차,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각 분야 전문가 150명을 초대해 10일 동안 조언을 듣는 ‘국내 정상회담’을 한 것도 그런 예다. 끝내 정국을 돌파하진 못했지만 최대한 귀를 열고 답을 찾으려 했던 노력만큼은 인정하는 것이다. 그의 퇴임 후 활동에 국민들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선 부러운 일이다.
▷현직은 짧고 여생은 길다. 카터의 대통령직은 4년 만에 끝났지만 이후 40년간 그는 보통 사람들의 롤 모델이었다. 록 음악을 사랑한 그는 밥 딜런 같은 록 스타 ‘절친’들과 자주 만났고, 종종 야구장을 찾아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이룬 모든 것에서 동등한 파트너였다’는 부인과는 70년 넘게 해로했다. 재선한 대통령들 중에도 존경받지 못하는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카터의 인생 2막은 삶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