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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정태기 선생은 언론자유에 몸 바친 ‘행동하는 사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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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시절 자유언론운동 이끌고

‘한겨레’ 창간 아이디어 내고 실행한

정태기 전 한겨레 대표 추모문집 나와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 등 회고 글

내달 5일 한겨레신문사서 출판기념회

발간 주도한 신홍범 조선투위 위원

“자유언론운동 귀중한 유산 알리려 내”


한겨레

정태기 전 한겨레 대표.


‘언론인 정태기 이야기-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두레).

독재정권에 의해 언론 자유가 말살되었던 1970년대에 자유언론운동을 이끌고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한 정태기(1941~2020) 전 한겨레 대표의 추모문집이다.

고인과 함께 자유언론운동을 하다 1975년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성한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투) 위원장과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전 한겨레 논설주간) 등이 고인을 회고했고 이원섭 전 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김현대 전 한겨레 대표, 고인이 한겨레 대표 시절 편집국장을 지낸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 등은 한겨레에 남긴 고인의 유산을 기록했다. 라면과 만화, 게임을 즐기고 과학책 읽기를 좋아했던 아버지와의 시간을 추억한 두 자녀(진형, 재은)의 글도 실렸다. 고인이 조투 위원장과 만년에 대산농촌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쓴 글도 담겼다.

한겨레

‘언론인 정태기 이야기’ 표지.


“올해가 정 선생이 세상을 뜬 지 3년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3년상을 치르잖아요. 이 기회에 추모 문집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죠. 한겨레 퇴직 후배들도 여러 군데서 정 선생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말도 들려왔고요. 그걸 보면서 비범한 정신과 숭고한 혼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집을 내어 정 선생의 고귀한 유산을 살리고 싶었어요.”

27일 오전 전화로 만난 신홍범 대표가 말하는 발간 배경이다. 그와 고인은 1965년 조선일보 입사 동기이자 나이도 같다.

‘정태기의 고귀한 유산’이 뭔지 묻자 신 대표는 바로 “자유언론운동”이라고 답했다. “정 선생은 1971년 4월에 조선일보 최초의 언론자유수호투쟁인 언론자유수호선언을 이끌었어요. 여기엔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 기자 대부분이 참여했죠. 4년 뒤인 1975년에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제작거부 투쟁을 중심에서 이끌었고요. 해직 이후엔 조선투위 위원장을 8년이나 했죠. 정태기를 빼면 조선투위를 말하기 힘들어요.”

1975년 초 조선일보 후배 기자들이 기자협회 분회를 재건해야겠다며 “후배 기자들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던” 고인에게 분회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고인은 “솔직히… 나는 기사 쓰는 기자를 더 하고 싶다. 하지만… 여건이 허용하지 않으면, 하는 수 없지”라며 받아들였단다. “정 선생은 ‘행동하는 사람’,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죠. 나는 그가 행동해야 할 때 회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구차하고 쩨쩨하게 행동하는 것도 보지 못했어요.”(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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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조선투위 100일 기념 자축모임(아래 왼쪽 셋째가 고인이며 위 왼쪽 첫째가 신홍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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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18일 한겨레신문 창간 주역들(왼쪽부터 송건호, 정태기, 권근술, 임재경)이 창간 소식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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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사람’ 정태기는 1987년에 국민 모금으로 한겨레신문을 창간한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불과 1년 만에 실행했다. 이원섭 전 한겨레 논설위원실장은 책에 ‘1987년 노태우 6·29선언에 신문사 등록이 사실상의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뀔 수 있음을 예고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고인이 이를 보고 국민 모금으로 새 신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썼다.

고인은 국민 성금으로 만든 한겨레에서 기자 출신들은 잘 맡지 않으려 하는 업무 쪽 일을 맡았다. 신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한겨레 창간 뒤 사옥을 지을 대지 구입이 정 선생에게는 큰 난관이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땅 주인을 설득하기 위해 집에까지 초대해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해요. 이 말을 들으면서 그가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죠. 한겨레 창간 뒤 정 선생이 ‘한겨레는 염력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사람의 간절한 염원이 만들어냈다는 뜻이죠.”

권태선 이사장은 고인이 한겨레 대표 시절 “한겨레의 자산인 신뢰 회복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며 그 예로 “기자들이 취재할 때 지켜야 할 상세한 기준을 담은 취재보도준칙 제정과 주주와 독자 및 시민의 시각으로 지면을 평가하는 시민편집인 제도 도입”을 들었다.

신 대표는 고인 등 한겨레신문을 만든 모두의 염원은 “참된 언론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했다. “진실한 언론은 세상을 바꿀 힘이 있어요. 진실은 힘이 세기 때문이죠. 민주와 민중, 민족이라는 삼민을 토대로 내용과 형식이 전혀 다른 새 언론을 만들고 싶었죠.” 그는 고인이 살았다면 한겨레 후배들에게 바랐을 염원을 이렇게 전했다. “정 선생은 한겨레가 조중동 반대편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좀더 큰 스케일을 가지고 나라와 시대를 선도하는 언론이 되길 바랄 겁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조중동이라는 신문은 언론사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좇아 정파의 이익을 열심히 대변하는 언론입니다. 피 흘려 얻어낸 언론자유를 공짜로 누리면서 그 자유를 남용하는 프로파간다(선전) 언론일 뿐이죠.”

그는 이어 “현재 한국 언론은 윤석열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고 온갖 짓을 하고 언론 통제도 강하게 시도하면서 굉장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언론이 이를 막지 못하면 또 다른 암흑시대가 될 것”이라며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쳤던 정태기 선생의 투쟁정신이 현 언론인들의 싸움을 지지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한겨레신문사와 조선투위 주최로 오는 5일 오후 2시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추모문집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두레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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