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한겨레 자료사진 |
‘트럼프가 이겼고 언론은 졌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머리기사는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는 중의적이다. 일단 미국 언론 대부분이 강력히 비판해온 후보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점에서 언론은 졌다. 하지만 더 큰 패배가 임박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주류 언론을 싸잡아 ‘가짜뉴스,’ ‘민주주의의 적’으로 공격해온 ‘안티 미디어’ 트럼프가 언론이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보도·감시 기능을 근본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예상되는 상황은 언론 취재에 대한 노골적인 방해다. 지난 트럼프 정권 때 비판적인 보도를 한 시엔엔(CNN) 등의 백악관 기자실 출입을 금지한 선례에 이어, 폭스뉴스 등 일부 보수 매체에만 기자실 출입증을 줄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문화방송(MBC) 기자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등으로 익숙한 상황이다. 한발 더 나아가 백악관 브리핑룸 자체를 폐쇄하고, 소셜미디어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FCC) 등을 앞세워 언론의 다양성 담보에 중요한 미디어 소유구조 관련 반독점법 등을 폐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싱클레어 미디어 그룹(지역 방송사 200여개 소유)과 가넷(지역 신문사 200여개 소유) 등 미국 언론 재벌들은 1980년대부터 인수 합병으로 지역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언론학자들은 싱클레어와 가넷 등 프랜차이즈형 언론이 취재에 투자하지 않고 인력 감축을 거듭하며 각 도시 요지에 있는 언론사 부동산 매각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약탈적 존재라고 비판한다. 학자들은 트럼프가 동일 시장에서 복수의 방송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반독점 규제마저 완화하며 보수 미디어의 언론 장악을 완성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에서 신문 방송 겸업을 가능케 했던 이명박 정권의 종합편성채널 허가와도 유사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주요 방송사의 허가 취소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9월 에이비시(ABC) 방송의 대선 토론 시 사회자들이 실시간으로 트럼프의 거짓 발언을 팩트 체크하자 분노한 트럼프는 이후 폭스뉴스에서 “그들의 방송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현 한국에서 티비에스(TBS) 등 비판적 목소리를 낸 방송국의 존재가 부정되는 상황이 오버랩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방첩법을 활용해 백악관 등 주요 권력기관과 언론 간 정보 공유 혹은 유출 등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방첩법은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외국 스파이로부터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그 모호성으로 언론 탄압에 오남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됐다.
실제로 미국 역대 정권은 진주만, 펜타곤 페이퍼 등 역사의 흐름을 바꾼 굵직한 보도에서 정부 기밀을 누설한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등에 방첩법을 적용한 처벌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2기 트럼프 정권 때 상황은 다를 것이다. 보수 우파가 대법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언론인들은 일(work)을 해야 하지만, 트럼프가 하기에 따라 전쟁(war)에 나설 준비도 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프로퍼블리카 등을 이끌며 퓰리처상을 받은 리처드 토플은 언론이 본연의 권력 감시 업무에 그 어느 때보다 충실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 헌정을 수호하는 전면전에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언론에 ‘일’과 ‘전쟁’을 구별하는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잘못된 외교, 조세 정책과 부당한 인사 결정 같은 실정이 ‘일’의 영역이라면,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의 검찰 권력 사유화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헌법 유린은 ‘전쟁’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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