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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스쿨미투’ 성범죄 교사 누명 벗는 데 5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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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광주 D여고 스쿨미투 사건

“직위해제” 일방 통보 뒤 검·경 조사, 기소

민·형사, 징계취소·급여지급 소송 긴 싸움

전교조, 진보 정당, 지역 언론 모두 외면

소송 다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

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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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 학교에서 남자 교사 절반 가까이가 성범죄자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당시에는 미투 분위기에 휩쓸려 누구도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광주 D여고 스쿨미투 사태로 직위해제 됐다가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5년간 법정 다툼을 해온 A(51) 씨는 조선닷컴 통화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5년전, D여고에서는 남자 교사 22명이 ‘성비위 교사’로 분류됐다. 전체 남자 교사(40명)의 과반이었다. 그 중 19명이 직위해제를 거쳐 수사를 받았다. 10명은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 남은 9명이 법정으로 갔다. 그리고 그 중 2명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A씨는 그 둘 중 한 사람이다.

A씨의 이후 5년은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벗기 위한 잇따른 소송으로 점철됐다. 변호사 비용 5000만원을 마련하려 적금도 깨고, 대출까지 받았다. 가족이 그동안 겪은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그는 형사 소송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학교 측 징계 취소를 요구한 행정 소송과 미지급 보수를 받아내기 위한 민사 소송에서도 모두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라고 했다. 밀린 월급은 일부만 들어왔다.

◇전수조사 후 직위해제... 소명 기회는 없었다

D여고 스쿨미투의 발단은 2018년 7월 18일 여교사가 교감에게 학교의 성비위 관련 문제 제기를 한 것에서 출발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회 간부의 건의와 학부모 민원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 측 대응이 통상적인 수준과 거리가 멀었다.

학교는 7월 23일 전교생(869명)을 대상으로 교내 성추행, 성폭행 관련 1차 무기명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교장이 직접 교육청에 제출하자, 7월 26일부터 이틀간 교육청과 광주남부서 합동조사단이 학생들에 대한 2차 전수조사까지 했다. ‘교사로부터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남교사는 접근이 금지됐다. A씨는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들이 학교로 들이닥치는데 점령군이 밀고 들어온 듯했다”며 “문제가 제기된 일부 교사만 조사를 받는 게 아니라 전수조사를 했는데, 지금도 그 이유를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방학 중이던 A씨에게 학교 행정실에서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다. 2차 분리조치 대상에 당신이 포함됐다. 잘 대처하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A씨는 “문자를 읽자마자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며 “학교나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볼 엄두도 안났고, 그저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알리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는 걱정과 원망 섞인 반응이 나왔다.

이어 ‘직위해제’ 통보가 날아들었다. 소명 기회는 전혀 없었고 어떤 문제가 제기됐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로지 학생들의 진술만이 유의미했고, 교사의 발언권은 철저히 박탈 당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고민하며 잠 못 이루는 날들을 보냈다.

8월 학생을 대상으로 피해자 조사가 진행된 후 9월말에야 A씨는 경찰서에 불려갔다. 거기서야 A씨는 자신의 피의자라는 사실과 혐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 복장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고소인은 3학년생 B·C양 2명이었다.

B양은 고소장에서 “1학년이던 2016년 당시 여름방학 방과 후 수업시간에 교복 단추를 열어 놨다는 이유로 A씨가 ‘그렇게 단추 열어놓고 다니면 남자친구가 좋아하니?’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C양은 “2학년이던 2017년 영어 수업시간에 얇은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A씨가 ‘요즘 유행이 시스루인가보다. 안에 다 보인다. 다음부터는 안 보이는 옷 입어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경찰에서 “복장지도를 했을뿐, 성적 의도로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경찰조사를 받기 직전 A씨와 10여명의 교사들은 전교조 광주지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A씨는 전교조 D여고분회 간부였다. A씨는 “당시 광주지부에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했지만, ‘지금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식의 얘기 외에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호소문을 써서 보냈지만 보좌관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내놨다. 지역 언론도 그를 외면했다. 거리로 나가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학교 앞에서 ‘부당한 교사 탄압을 중단하라’고 시위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상처뿐인 승리... “모든 교사가 겪을 수 있는 일”

이듬해 2월, 검찰은 A씨를 ‘성희롱’이 아닌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했다. 3월에는 교육청 감사관실에서 조사도 받아야 했다. 교육청은 A씨를 포함해 교사 22명에 대해 징계를 권고했다. A씨에 대해서는 ‘해임’이 권고됐고, 유죄가 인정되면 곧바로 해임될 처지에 놓였다.

A씨는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2016년 1학년 학년부장, 2017년 2학년 기획교사를 맡아 학생 생활지도를 하면서 복장 지도에 힘썼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재판과정에서 B양이 2016년 여름방학 당시 A씨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음을 입증했다. A씨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학생의 탄원서 120장도 제출했다. C양과 같은 반이었던 학생 2명이 재판에 출석해 탄원서와 비슷한 취지로 증언했다.

같은해 9월 1심 무죄 판결이 났지만,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A씨에게 같은해 12월 ‘정직 1월’의 징계를 내렸다. 검사 측 항소로 형사재판은 2심에 들어갔는데, A씨는 형사재판을 받으면서 징계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위원회에서는 ‘기각’ 결정이 났지만, 마침내 2020년 7월 2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재판부는 “A씨가 교복 상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가학적 성격이 있다거나 발언 수위가 사회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없다”며 “A씨가 반복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취지의 언행을 했다고도 볼 수 없어 정서적 학대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무죄’ 판결을 받아든 직후 A씨는 징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소송은 3심까지 가서야 2022년 1월 A씨 승소로 마무리됐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학교 측은 계속 항소하며 A씨를 괴롭혔다.

긴 법정다툼은 ‘미지급 보수’를 둘러싼 2년간의 민사소송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지난 4월 학교 측에 A씨에게 미지급보수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학교가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지난 7월까지 미지급 보수와 지연이자가 8700여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학교는 성과급 등을 제외한 7500여만원을 7월 17일 지급했다. A씨는 학교, 교육청과의 여러차례 면담 끝에 어렵게 나머지 금액 지급 약속을 받아냈다.

A씨에게, 그리고 D여고 다른 교사들에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

A씨는 “과거 사학 재단이 비리에 연루되면서 광주 교육청 인사들이 학교 주요 관리직에 대거 내려왔는데, 그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학교를 끌고 가기 위해 당시의 ‘스쿨미투’ 분위기를 이용한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며 “이 사건 역시 배경엔 ‘추락한 교권’ 문제가 깔려 있다”고 했다.

이어 “내게 벌어진 5년간 일은 단지 개인의 일이 아니다. 모든 교사의 일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무너진 교권 회복을 위해 같이 힘써야 한다. 이는 교사들의 권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했다.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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