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지?”어떤 현상을 마주칠 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됐다. 행보에 관한 의문일 수도 있고 집요한 디테일에 관한 의문일 수도 있는데, 알고 보면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로 귀결된다.
29CM는 그런 플랫폼이다. 돌연 프로덕션과 손을 잡고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광고를 서른세 장짜리 슬라이드로 만드는 등 커머스사라기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일들을 이어왔다. 사업 초기 29CM가 내건 자기소개 “우리는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느닷없이 인공위성을 쏠 수도 있다”는 9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한 셈이다.
29CM의 시도는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는 브랜드 모티브가 되었고, 천 억대 거래액(2019년)이라는 결과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올해 1월 29CM은 커머스사로는 이례적으로 광고제인 앤어워드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대표 콘텐츠인 PT(온라인 프레젠테이션)가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다. PT 제작을 총괄하는 미디어팀 김혜인 팀장을 만나 콘텐츠 노하우에 대해 들었다.
29CM 김혜인 미디어 팀장 ⓒ29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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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콘텐츠의 핵심은 ‘나를 대입해보게 만드는 것’”29CM의 PT(온라인 프레젠테이션)는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전엔 무슨 일을 하셨나요.
패션 매거진 맵스(MAPS)의 기자로 일을 시작했어요. 하이패션보다는 나와 가까운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다뤄보고 싶었거든요. 3~4년 기자 경력을 쌓고 스트릿 브랜드 브라운브레스(BROWN BREATH)에서 PR과 마케팅 업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각 분야의 실력자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 B>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새로운 문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무형 문화재인 김대석 부채 장인과 협업해 한정판 부채를 만들기도 하고, 스케이터 보더들과 영상을 만들고 멕시코 정통 타코 문화를 알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브랜드의 매력을 29CM만의 톤앤매너로 소개하는 일을 4년째 하고 있어요.
29CM만의 톤앤매너란 무엇인가요. 내부에서는 어떤 언어로 정의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먼저 고객에게 각인될 수 있는 감도 높은 비주얼이 중요해요. 그다음으로는 친숙해야 합니다. 저희 PT에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비현실적인 외국 모델도 드물고요. 콘텐츠를 보는 고객이 자신의 일상을 쉽게 대입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수록 구매 경험이 좋아지니까요. 저희는 결국 커머스사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화자를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로 설정합니다. 이미지도 인위적인 완벽함보다는 자연광 아래서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요.
담백한 카피 라이팅으로 유명해요.
브랜드에 따라 차이를 두긴 하지만, 친근한 구어체를 사용합니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쉽게 떠올릴 수 있게요. 전체적으로 비주얼, 카피, 구매 경험이 깔끔하게 떨어지게 만들어요. 보기에만 멋진 게 아니라, 보는 사람 마음에 감동을 주고 그것을 구매로까지 연결할 수 있는 것이 29CM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콘텐츠예요.
타깃층이 나와 동떨어진 집단일 경우에는 어떻게 톤을 결정하나요? 화자에 이입하기가 어려울 텐데요.
그럴 땐 인터뷰나 설문 조사를 진행하기도 해요. 삼성화재와 함께 한 <어쨌든 모험여행> 프로젝트 때는 전사에 설문 조사를 돌렸어요. 가장 여행하고 싶은 도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여행 경비,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 등등의 10가지 질문을 던졌죠. ‘몰타섬 여행’이 주제가 된 것도, 저희 팀원들이 가장 선호한 여행지가 몰타섬이었기 때문이에요.
“협업의 기본,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난다”미디어와 커머스의 욕구가 가끔 충돌하지는 않나요? 예를 들어 효율과 정성, 수익과 감성은 상반된 요소일 수 있고요. 내부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궁금합니다.
커머스에서는 매출이 가장 중요하고, 미디어에서는 콘텐츠의 질이 가장 중요해요. 보여주기엔 이 상품이 제일 예쁜데, 매출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수 있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린 결론은 ‘우리 고객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을 만한 제품을 PT 하자’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보이스와 궁합이 잘 맞는 상품인지를 보는 거죠.
진짜 잘 만든 콘텐츠와 진짜 잘 팔릴 상품이 착 붙어야 매출 견인이 돼요. 어중간한 제품을 억지로 포장하려고 들면 콘텐츠 완성도는 물론 매출도 안 나옵니다. 그런 상품을 고르는 눈을 기르기 위해 커머스팀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요. 매출 연결은 안 되지만 브랜딩 측면에서 가치 있는 PT를 진행할 때에는, 광고 비용으로 보완하려고 해요.
가장 성공적인 협업 브랜드 사례가 있다면요.
지난 1월에 협업한 질레트(Gillette)가 좋은 예예요. 질레트가 이번에 프리미엄 라인 면도기를 런칭했는데, 고가 모델이기 때문에 타깃층은 한정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루밍을 좋아하는 2535 남성 또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하는 애인이나 가족들이 주로 구매할 것이라고 봤죠. 그래서 질레트에 ‘우리는 이 타깃에 맞춰 뾰족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이고 예상 매출은 이 정도 날 테니, 브랜드 측에서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 계획을 같이 세워달라’고 요청했어요.
질레트 강남역 옥외광고 이미지 ⓒ한국 피엔지(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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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PT 진행 기간 동안 강남역 부근의 29CM 오프라인 스토어에서도 팝업 행사를 열었는데, 때맞춰 질레트가 강남역 출구 전면에 옥외 광고를 크게 내걸면서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질레트 내부에서도 만족해서, 현재 발렌타인 기념 PT도 추가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난다는 거군요.
맞아요. 파트너사와의 합이 정말 중요해요. 앤어워드에서 함께 그랑프리 상을 받았던 삼성화재와도 시너지가 좋았죠. 과거 PT를 진행했던 브랜드 중, 자사 SNS 콘텐츠를 외주로 맡기는 곳들도 있어요.
브랜드들이 29CM의 콘텐츠 역량을 믿어준다는 것으로 이해되네요. 브랜드들에게 일종의 에이전시 역할을 해주는 건가요?
아니요. 미팅할 때 저희는 에이전시가 아니라고 확실히 말씀을 드려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협업 관계로 일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만큼의 결과를 약속할 테니, 브랜드도 이런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소통해요. 콘텐츠 완성도에 대해 자신이 있기 때문에, 수정 횟수도 정해서 제안하고 있어요. 브랜드가 신뢰하는 파트너사로 일하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10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은 PT를 만들자’는 마음으로”최근에 프라이탁과 진행하신 PT를 봤어요. A부터 Z까지 인덱스를 붙여 브랜드 스토리를 풀어낸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기획은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나요.
프라이탁은 29CM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브랜드예요. 온라인에서 자사몰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29CM에 단독 입점해 있고, 브랜드 히스토리와 가치관도 확고하죠. 이 PT를 진행하면서 팀원들과 말했던 게 ‘10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은 PT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당시 프라이탁을 자세히 소개한 자료가 10년 전에 출간된 안그라픽스의 <프라이탁>이라는 책과 <B 매거진>의 창간호 뿐이었어요. 10년이 흐르는 동안 브랜드는 성장하고 변화했는데도 말이에요. 단순 광고가 아닌 앞으로 10년을 읽힐 브랜드북을 만들자는 관점으로 작업을 풀어나갔습니다.
29CM와 프라이탁이 함께 진행한 PT. 프라이탁의 브랜드 스토리 A-Z를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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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하나의 PT를 만드는데 보통 5주가 걸려요. 프라이탁 때는 사전 작업을 더 오래 했어요. 브랜드에서 받을 수 있는 자료는 다 받고, 영문 자료까지 번역해서 회의실에 쫙 펼쳐놓고 봤죠.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선별하고, 추린 내용을 목차화한 다음, 진정성 있는 브랜드의 스토리를 담고, 잘 보여지게 디자인하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PT가 완성됩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파트너사와의 관계도 끈끈해지겠어요.
맞아요. 프라이탁의 경우 저희가 하드카피 책을 컨셉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맨 앞 페이지에 추천사를 써달라고 요청했었어요. 프라이탁 코리아의 장유시 대표님이 토씨 하나도 고치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추천사가 기억에 남아요.
프라이탁 PT 첫 장에 장유시 대표가 남긴 추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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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까지의 PT 일정이 이미 다 잡혀 있다고 들었어요. 협업을 원하는 브랜드가 많은 만큼, 29CM에게도 선택의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진정성 없는 브랜드를 포장할 수는 없어요. 진실된 브랜드들과 작업하려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29CM에 대한 믿음도 꺾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지만, 결국 고객 마음에 닿는 아주 소수의 메시지만 기억에 남게 돼요. 브랜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에, 밀레니얼이 신뢰하는 플랫폼인 29CM의 목소리가 더해졌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고객의 취향을 업그레이드하는 브랜드의 브랜드”현재 29CM에서의 직함은 미디어 팀장입니다. 그것과 관계없이, 본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나요.
콘텐츠를 만드는 배의 선장이라고 생각해요. 29CM 미디어팀에는 믿음직하고 뛰어난 팀원들이 있어요. 저의 역할은 방향성을 잘 잡고, 우리가 함께 성장할 수 있게 더 나은 다음 단계를 제안하는 거에요.
만드는 사람의 취향과 안목이 콘텐츠의 감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이 감각을 기르기 위해 특별히 하는 활동이 있나요.
잘 놀아야 해요. 저는 음악부터 음식까지 취향에 맞는 것이라면 아주 깊고 성실하게 파는 스타일이에요. 독서 모임이나 다양한 뉴스레터 구독도 꾸준히 해오고 있고요. 또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요. 팀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생각으로부터 건강한 콘텐츠가 나온다고 늘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난 1월에는 29CM가 새로운 비디오 커머스를 출시했어요.
29TV는 9년간의 29CM의 방향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비디오 커머스예요. 저희 미션이 ‘Guide to better choice’인데, 같은 맥락에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비디오 가이드’로 29TV를 정의했죠. 29CM이 지금까지 감성적인 카피와 이미지로 소구했듯, 29TV도 브랜드가 가진 정서를 느낄 수 있는 29초의 짧고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여요. 키보드 상품을 ASMR로, 시계 제품을 무용수의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식입니다. 3월부터는 29CC라는 크리에이터 크루를 모집해서, 브랜드와 크루들이 함께 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장을 열어줄 생각이에요. 이걸 PT의 영상 버전으로 볼 수 있고요. 저희도 어떤 결과물들이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29CM가 어떤 브랜드가 되길 바라시나요.
29CM이 고객들의 취향을 대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취향을 한층 업그레이드해 주는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9CM가 단순 쇼핑몰이 아니라, 개인의 안목을 기르는 하나의 통로로 여겨질 수 있게요. 그런 브랜드와 플랫폼이 되기 위해 앞으로도 일상의 경험을 풍성하게 만들고,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글: 손 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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