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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만물상] '밀레니얼 여성 내각'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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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동쪽으로 러시아와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1917년 독립 이후에도 두 번에 걸쳐 소련과 전쟁을 했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적을 저격한 사람이 핀란드 군인 시모 헤이헤다. 193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겨울전쟁에서 헤이헤가 사살한 소련군 숫자가 542명에 달한다. 소련군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핀란드는 없었을 것"이라는 헤이헤의 말이 대국 틈에서 생존을 지켜내는 '핀란드 정신'을 함축한다.

▶한국과 비슷하게 20세기에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고 1970, 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쳤다. 인구는 550만명밖에 안 된다. 그런 나라에서 '최초'와 '1위'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기록이 상당하다. 지난해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 보고서에서 핀란드가 156국 중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57위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거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기본임금' 실험을 제일 먼저 시도한 나라도 핀란드다. 2017년 1월 무작위로 선정한 실업자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씩 2년간 지급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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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다시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됐다. 34세 여성 정치인 산나 마린이 총리로 취임해 세계 최연소 정상이 된 데 이어, 장관 19명 중 12명을 여성으로 임명하는 초강력 '여초(女超) 내각'을 구성한 때문이다.

▶1906년 유럽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도입한 나라답게 국회의원 200명 중 거의 절반(93명)이 여성이다. 여성 총리는 벌써 세 번째다. 마린 총리는 '30대 최연소' '동성애 가정'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전 여성 총리들과도 남다르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집안에서 대학 진학한 사람은 마린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혼 후 어머니가 동성애자가 되는 바람에 '엄마 둘 가정'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마린 총리는 "내 나이나 성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정치에 뛰어든 이유, 유권자 신뢰만을 생각한다"고 했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태어난 세대를 '밀레니얼 세대'라고 한다. 고등교육을 받고 IT에도 능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세대다. 핀란드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개 정당 대표 중 4명이 85년생 아니면 87년생 여성이다. 나머지 1명도 나이는 50대지만 여성이다. 혁신과 도전에 강한 핀란드에서 '밀레니얼 세대' 여성의 리더십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정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맞을지 주목된다.

[강경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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