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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만물상] 중국 對 필리핀 해상 백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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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고대와 중세 해전은 상대 배를 들이받는 돌격전이 많았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군은 뱃머리에 돌출한 충각을 앞세워 상대 배를 침몰시켰다. 중무장 해병은 상대 배로 건너가 페르시아 보병을 섬멸했다. 나중에는 함선 간 근거리 포격전을 벌인 뒤 갈고리로 상대 배를 끌어당겨 백병전을 벌였다. 해적도 활용했다. 오스만 제국은 로도스섬 공방전에서 지중해 해적과 동맹을 맺었다.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할 땐 반관반민 해적 출신인 드레이크가 스페인 함선 37척을 불태우며 맹활약했다.

▶이런 구식 해전은 근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남중국해에선 범선 시대의 해상 백병전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 앞바다나 마찬가지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가 자신들 영해라고 주장한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영유권 공세가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소용이 없다. 중국은 준군사조직인 해상 민병대를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평소 어업을 하다 정부 지침이 내려오면 해군 대신 분쟁 지역에 출동해 상대 배를 공격한다. 한 번에 100척 이상이 출현한 적도 있다. 제대 군인이 다수인데 정부 지원을 받아 초고속 장비와 무기까지 갖추고 있다. 행태가 해적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우리 서해에도 출몰한다.

▶해군이 약한 필리핀은 중국의 공세를 막을 힘이 부족했다. 1997년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2차 대전 때 쓰던 100m 길이의 폐군함을 고의로 좌초시켰다. 이 배에 해병대를 주둔시켜 섬을 지키고 있다. 그러자 중국이 필리핀 해병대에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는 필리핀 보급선을 물대포로 공격하고 있다. 돌을 던지고 도끼와 곡괭이를 휘둘렀다. 칼로 필리핀 고무보트를 찔러 구멍을 내고 보급품을 빼앗았다. 레이저 공격도 한다. 필리핀 선원의 손가락이 잘리는 등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필리핀은 분노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산 선박을 표적으로 바다에 띄워 놓고 한국서 수입한 군함에서 한국산 대함 미사일을 쏴 격침시켰다. 단 한 발에 대형 선박이 침몰하자 필리핀은 환호했다. 중국에 공개 경고를 보내고 국민 울분도 푼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 지대에서도 몽둥이·돌·칼을 동원한 백병전이 수시로 벌어진다. 무력 충돌 확대를 피한다며 두 핵보유국이 육박전을 벌이는 것이다. 중국은 못이 박힌 쇠몽둥이와 과거 관우가 쓰던 언월도까지 들고 나왔다. 인도 군인 수십 명이 죽었다. 해발 4000m 이상 고원 지대 호수엔 최신 순찰정 수십 척을 배치해 대치하고 있다. 21세기 원시적 백병전엔 모두 중국이 끼어 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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