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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외롭냐? 개도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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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외롭다는 이유로 개를 키워서는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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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왼쪽)와 은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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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개아빠가 된 건 결혼할 때 아내가 키우던 개를 데려온 덕분이었다. 결혼 후 한달이 지났을 때 우리 부부는 개 한 마리를 더 입양했다. 먼저 있던 개의 이름이 뽀삐여서 둘째 개는 예삐라고 지었다.

한 마리를 더 데려오자고 한 속내는 뽀삐가 내게 그다지 정을 주지 않는 게 서운해서였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도 있었다. “우리가 나갈 때 뽀삐 혼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 둘이 있으면 같이 노니까 한결 낫겠지.”

예삐는 우리 기대에 100% 부응했다. 첫째, 아내와 나를 똑같이 따랐다. 아내와 내가 동시에 예삐를 부르면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다. 둘째, 뽀삐가 다소 정적인 강아지였던 반면, 예삐는 우리가 바라던 ‘노는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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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돌봐주는 개주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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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삐는 수시로 뽀삐에게 같이 놀자고 치근덕대곤 했으니, 예삐로 인해 뽀삐도 덜 심심했을 것이다. 셋째, 예삐가 있어준 덕분에 아내와 나는 죄책감 없이 밖에 나갈 수 있었다.

여섯이면 덜 심심하겠지?

그 예삐와 뽀삐가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우리는 6마리의 개를 거느린 대가족이 됐다. 6마리가 두루 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끼리끼리 짝을 지어서 놀곤 한다. 던져주는 공 하나를 서로 갖겠다고 다투기도 하고, 먹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견제하기도 한다. 때로는 서너마리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나: 여럿이 노니까 더 귀엽네?

아내: 저 맛에 여러 마리 키우는 거야.

두 마리만 있어도 외로움이 덜한데, 여섯 마리면 어떨까? 혹시 우리가 없어도 자기네들끼리 더 신나게 놀지 않을까? 마침 TV에서 개 CCTV 광고가 나왔다. 개 주인이 있을 때는 얌전한 척하던 개가 주인이 나가자마자 집을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주인이 돌아오면 모든 책임을 다른 개한테 돌리다가 결국 CCTV로 인해 덜미를 잡힌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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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등등. 하지만 개의 관심은 오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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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 개들은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졌고, 결국 휴대폰을 이용한 CCTV를 집안에 설치했다. 여기엔 물론 우리가 없는 사이 개들에게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고픈 의도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외출했던 날, 아내는 휴대폰으로 CCTV를 확인했다. 나도 옆에서 조그만 눈을 빛내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잉? 애들이 다 어디 있지? 한 마리도 안보이네?”

우리집 개들의 주 거처는 아내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마루였다. 그래서 CCTV도 마루를 향해 설치했건만, 정작 마루엔 개가 한 마리도 없는 것이다. 다음번엔 CCTV의 방향을 돌려 현관을 향하게 해봤다. 이럴 수가. 개들은, 죄다 현관 앞에 있었다. 그것도 납작 엎드린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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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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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CCTV를 확인할 때마다 개들은 늘 그 자세로 현관 앞에 있었다. 자기네끼리 어울려 놀 것이라는 내 짐작은 틀렸다. 우리가 없는 동안 개들은 현관 앞에서 그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네끼리 즐겁게 노는 것도, 때로는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도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귀가해 현관 안으로 들어오면 반갑다고 난리를 쳤던 것이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이가 나타나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예삐와 뽀삐도 똑같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아내는 되도록 외출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 또한 집안에 있을 때, 물론 일을 하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잠깐 짬이 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개들과 조금이라도 더 놀아주려고 애를 쓴다.

그래도 우리 개들은 사정이 낫다. 기다림도 둘이 같이하면 덜 지루하니까 말이다. 서로 대화를 하는 건 아니라 해도 나만큼 지루해하는 또 다른 이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둘이 아니라 여섯이라면 훨씬 더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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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움직이자 모든 개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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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혼자 방치되는 개다. 개 주인이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는, 그래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개 말이다. 개는 사람으로 따지면 서너살 정도의 지능을 지닌 존재, 그 나이의 애들이 부모에 대해 분리불안을 느끼듯이 홀로 남겨진 개도 불안과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은 자주 짖고, 집안 물건을 물어뜯고, 소변을 아무 곳에나 싸는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한단다.

개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자신이 외롭다는 이유로 개를 키우지 않는 게 좋다. 그로 인해 자신의 반려견이 우울증에 빠질 수 있으며, 자신의 외로움이 해소되는 순간 그 개는 버려지거나 다른 곳으로 입양을 갈 수 있다.

둘째, 이왕 개를 기르겠다면 두 마리로 시작하자. 개가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 다른 개를 데려오면 질투심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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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는 세상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는다.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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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정상 두 마리는 안 된다면, 있는 동안 개한테 최선을 다하자. 특히 나가기 전이나 귀가 후 산책을 시켜주는 게 도움이 된다. 산책으로 인해 개는 그간 느꼈던 스트레스를 확 풀고 주인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산책이 힘들다면 진이 빠질 정도로 놀아주시라. 물론 시간이 없다고 하겠지만, 이 정도도 하지 않는다면 개를 키울 자격이 없다. “혼자 둬서 미안해”라는 말만 하는 대신, 그 미안함을 상쇄할 행동을 하시라.

평소 우리는 세상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는다. TV, 스마트폰, 인터넷 등등. 하지만 개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기를 돌봐주는 개주인이다. 마루에 개 여섯 마리가 있을 때, 개들의 방향은 늘 아내나 나 쪽을 향해 있다. 둘 중 하나가 움직이면 개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따라간다. 오직 주인밖에 모르는 바보, 그게 바로 개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도, 이왕 기르기로 했다면 이 개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진 말아야지 않겠는가?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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