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4 (월)

[크리틱] 공(公), 공(共), 공(空) -상 / 신현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정치경제학자


서울시 공덕역 부근에 ‘경의선 공유지’라는 곳이 있다. 철도 일부 구간이 지하화되면서 생긴 공터 가운데 하나로 고층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2013년부터 이곳에는 문화기획자, 사회적 기업가, 기타 활동가 등이 모여서 공동장터를 합법적으로 운영했다. 2015년 말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불법점거자’가 되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른바 ‘예외공간’이다.

오늘은 소싯적 공부한 한자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국한문 혼용체’를 써야 할 것 같다. 다름 아니라 ‘공’이라는 한글 문자의 뜻이 혼동스럽기 때문이다. ‘공터’란 비어 있는 땅이니 이때의 ‘공’은 ‘空’이 분명하지만, 공유지의 ‘공’은 ‘公’일까, ‘共’일까. 전자라면 ‘나라(국가)가 소유한 땅’이라는 뜻이고, 후자라면 ‘여럿이 함께 누리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일군 주역들은 초기에 ‘퍼블릭 랜드’(public land)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서 공유지(公有地)라고 인식했다. 그러다가 최근 이곳의 성격을 토론하면서 공유지(共有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모든 성원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의미에서 영어 단어 ‘코먼’(the common)을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면 10대 시절 암기한 영어 단어도 회상할 필요가 있다. ‘코먼’이라는 단어는 ‘공동(의 것)’이라는 기본적 의미 외에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코먼 피플’(common people)은 ‘평민’이고, ‘코먼 센스’(common sense)는 ‘상식’이고, ‘코먼플레이스’(commonplace)는 ‘진부하다’로 해석된다. 즉, 이 단어에는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진부하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즉, 함께(共) 같이(同) 누린다는 것은 그 대상이 ‘별것 아니다’라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이렇게 별것 아닌 것이 특별하고 예외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두절미하고 말한다면, 자본주의의 신성한 법칙인 사유재산 때문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한술 더 떠서 공유(公有)였던 자원을 사유(私有)로 만드는 것이 상습이 되었고, 경의선 공유지도 나라 땅을 사기업에 실질적으로 팔아먹으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다짜고짜 ‘사유재산 철폐’를 주장하는 것이 공허하기 짝이 없는 시대지만, 함께 같이 누릴 수 있던 것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도 그만큼 공허하다. 개릿 하딘이 말한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상의 복잡한 이야기를 무시하고, 이 글을 시작할 때 사용한 ‘공터’라는 말로 돌아가 보자. 내가 경의선 공유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곳이 공터 같기 때문이다. 이런 공터는 예전에는 도시공간 도처에 널려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외에서 마치 내것처럼 널브러져 있어도 되고 가건물들의 문은 열려 있어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비어 있으니 함께 같이 채울 수 있다. 엉터리 한문이겠지만, 공즉시공(空卽是共)이다.

오늘의 주장. 공(公)과 공(共)은 다르다. 그러니 공공(公共)이라는 말로 찰떡처럼 붙어 있는 두 한자 단어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공(公)에 기대지 않고 공(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공(公), 이른바 ‘공권력’(公權力)은 도와주지 못할망정 사(私)의 편을 들면서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즉, 공즉시공(空卽是共)일 뿐 공즉시공(共卽是公)은 아니다.(다음에 계속)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