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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세수 펑크에 예측불가능…‘자유시장경제’와도 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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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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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이면 윤석열 정부 임기가 반환점이 된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개인의 역량이 아닌 시스템을 통해 운영되는 나라라고 믿었다. 확립된 법제도는 물론이고 전문 관료와 정치 관행이 있어 대통령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건 지난 정부가 증명했다. 전문 관료가 설정한 한계 안에서 정치 관행을 바꾸지 못하고 5년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다르다. 기존의 정치 관행은 물론 관료 말도 잘 듣지 않는다. 심지어는 법제도와 헌법 원리까지 벗어나는 통치를 한다. 나는 윤석열 정부의 가장 중요한 폐해 하나만 꼽으라면 ‘예측 불가능성’을 꼽고 싶다.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해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상수가 되었다. 지금까지 행사한 거부권만 24회다. 해방 후 전쟁까지 겪은 극심한 정쟁 상황에서 12년 동안 이승만 정권이 행사한 거부권 45번 기록을 넘길지가 관건이다. 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시행될지 예측할 수 없다.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되었다고 시행되는 것도 아니다. 2020년 말 금융투자소득세는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4년간 준비해오던 금투세 시행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갑자기 이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한 법안도 대통령 맘에 안 들면 시행을 못 한다. 두어달 뒤인 내년 초 시행 여부조차 예측이 불가능하다.





즉흥적 정책의 나쁜 선례





공포되고 시행된 법조차 이틀 만에 엎어지기도 한다. 여야정 합의에 따라 국회에서 확정되어 이미 시행 중인 반도체 세액공제도 윤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 바뀐다. 2022년 12월 기획재정부 권고에 따라 여야는 반도체 등 세액공제 규모를 확정했다. 기존 6% 공제를 8%로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은 2023년 1월1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법안이 시행된 지 불과 이틀 뒤인 1월3일 윤석열 대통령은 여야정 합의에 따라 시행 중인 반도체 등 세액공제를 15%로 추가 확대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변덕으로 투자 세액공제율이 무려 150%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투자를 늘렸을까? 안타깝게도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최근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설비 투자를 보류했다고 한다. 이미 가동 중인 파운드리 생산라인 설비조차 주문 물량이 없어 셧다운했다고 한다. “(대만의 반도체 제조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를 따라잡기 위해 제조 시설을 먼저 지은 뒤 주문을 받는 ‘셀 퍼스트’ 전략이 과잉 투자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신문은 전한다. 즉흥적인 정책의 나쁜 선례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본예산 세입 규모 확정 이후, 반도체 세액공제 규모가 확대되었으니 세수가 줄 수밖에 없다. 줄어들 세수만큼 본예산 세입 규모도 감액 조정하여 국세수입 규모를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세입 감액 추경을 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2023년도 추경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지난 정부는 매년 추경을 했으니, 이번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라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추가 감액을 했는데 감액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를 재추계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세수결손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큰 폭의 세수결손이 발생했을까? 정부는 감세와 세수결손은 상관없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본예산에 이미 감세효과가 반영되었으니 세수결손은 감세와 상관이 없고 세수결손은 남 탓(글로벌 복합위기 여파)이다. 정부 말대로 감세효과를 본예산에 제대로 반영했다면, 감세와 세수결손은 상관없다. 그러나 2022년 법인세율을 큰 폭으로 낮추는 감세를 하면서 당시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세율을 내려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재부 공식 문서는 법인세율 인하에 따라 5년간 세수가 30조원 줄고, 정부의 감세 정책을 통틀어 5년간 60조원 준다고 했다.



기재부 장관의 말과 기재부의 문서가 서로 다르다. 시장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 기재부 장관 말이 맞을까, 기재부 말이 맞을까. 안타깝게도 둘 다 틀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5년간 74조원이 준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장관이 세수가 전혀 줄지 않는다고 주장하니 기재부는 세수 감소 효과를 축소할 수밖에 없다. 세수 감소 효과를 축소하니 세수결손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회 확정 예산액까지 임의 삭감





2023년 사상 최악의 56조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한 이후, 2024년 올해도 두번째로 최악인 30조원의 세수결손이 예측된다. 세수가 줄면 국채를 추가 발행하거나 세출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국채 추가 발행을 안 한다고 하니, 세출감액 추경을 통해 어떤 예산이 얼마나 줄어들지 시장 참여자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추경 없이 지방교부세 등을 알아서 줄인다고 한다.



이것이 예측 불가능성의 끝판왕이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 국가다. 국회는 예산 심의권이 있다. 행정부는 국회에서 확정한 예산은 따라야 한다. 모든 시장 참여자는 정부의 본예산액이 실제로 집행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만약 세수결손 등으로 삭감이 필요하면 교부세 감액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작년 기재부는 국회가 심의하여 확정한 교부세 등 예산액을 임의로 삭감했다. 그 결과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침해당한 국회의원과 교부세를 교부받지 못한 단체장들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제기했다. 그런데 헌재 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올해 30조원의 세수결손이 예측되자 또다시 교부세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밝힌다.



국회가 확정한 교부세 등 예산액을 추경이라는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행정부가 임의로 줄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가 어떤 지자체에 교부세를 1천억원을 준다고 해도 실제로 950억원을 줄지, 900억원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보조금을 10억원 준다고 예산서에 있어도 9억원을 줄지 8억원을 줄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예산서를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산서를 믿고 세웠던 모든 계획이 진행될지 여부를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이 정부는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한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안과 예산 수립에 공식 절차를 마련했다. 그러나 공식 절차보다는 대통령 의중이라는 변수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줄이면 자유시장 경제는 무너진다.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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