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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디테일추적>편의점이 내놓은 '여친이 싸준 도시락', 진짜 여친도시락과 비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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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 편의점이 출시한 도시락을 두고 성 차별 논란이 뜨겁다. ‘여친이 싸준 도시락’,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라는 상품명에 ‘여성의 가사노동은 당연하다’는 편견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꼭 엄마, 여친이 싸준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것이냐, 여성 혐오나 다름없다”는 주장과 “편의점 도시락의 주 고객인 남성을 타깃으로 한 것. 피해의식이 지나치다”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CU 편의점 측은 “푸짐하고 맛있는 컨셉이다보니 어머니의 따뜻함과 여자친구의 세심함을 떠올릴 수 있는 상품명을 정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도시락은 늘 푸짐하고 따뜻하며, 여자친구의 도시락은 항상 세심하고 맛있는 걸까? 20대 남녀 6명이 모여 실제로 받은 도시락과 논란이 된 도시락을 비교해봤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 “우리 엄마 밥보다 진수성찬”

조선일보

'프로도시락'의 어머니가 직접 싸주신 현실 도시락(왼쪽)과 CU에서 출시한 '엄마가 싸준 도시락'(오른쪽)/김소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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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시락(여·26): 이 사진은 지난해 제가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 반찬입니다. 두부랑 멸치, 무말랭이네요. 대학생 때부터 고시공부를 마치기까지 6년 동안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어요. 프로 도시락러로써 이 도시락(CU 도시락)은 진짜 진수성찬입니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싸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우선 반찬이 다르네요. 제 도시락은 무말랭이, 젓갈, 깻잎지가 대부분이고 반찬 개수도 3가지 정도에요.

―동그랑땡(남·25): 오른쪽 도시락이 맛있어 보이지만 너무 과하지 않나요? 저는 고3 되기 전 겨울 방학 때 입시 학원에 다니면서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먹었어요. CU 도시락 속 제육볶음처럼 고추장이 많이 섞인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동그랑땡처럼 덜 자극적인 음식들을 주로 싸주셨어요. 물론 김치는 있었죠. 하지만 최대한 속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으로 챙겨주려 노력하셨어요.

―프로도시락: 그러고 보니 햄 반찬이 보이는데, 우리 엄마는 햄을 계란을 묻혀서 해주시긴 했어요. 계란말이가 맛있어 보이긴 하나, 양이 적군요. 밥도 양이 좀 적은 듯해요. 우리 엄마는 늘 어마어마한 양의 계란말이를 싸주시곤 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고시준비를 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는 ‘밥 심’이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진짜 양이 많았죠.

―나물좋아(남·26): 나물반찬이 많아서 좋네요. 그런데 여친이 싸주면 고기만 가득해야하고 엄마가 싸주면 호박, 계란말이가 있어야 하는 건지… 이상한 고정관념인 것 같아요. 그래도 ‘여친이 싸준 도시락’이라는 이름보다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편의점에서 먹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친이 싸준 도시락’? “혼자 사먹기는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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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사랑'이 남자친구를 위해 싸준 현실 도시락(왼쪽)과 CU에서 출시한 '여친이 싸준 도시락'(오른쪽)/김소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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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사랑(여·25): 사진은 재작년 봄, 남자친구와 하늘 공원으로 소풍 가면서 제가 직접 싼 도시락입니다. ‘여친이 싸준 도시락’은 제가 남자친구에게 싸준 것보다 반찬 종류가 훨씬 많네요. 고기를 좋아하는 ‘초딩입맛’ 남성을 겨냥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딱 보았을 땐 먹음직스럽고 맛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반찬이 많아서 먹고 나면 입이 짤 것 같은데요. 제가 싸준 도시락에는 과일이 있는데 여긴 없습니다.

―미래여친기다려(남·27): 아직 여자친구에게 도시락 받아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반찬이 볶음김치, 산적, 불고기, 무말랭이, 장아찌 등이네요… 구성이 여자친구치고는 올드하게 느껴져요. 차라리 여자친구 스테레오타입(정형화)에 맞춰 과일이나 미니 크로아상, 샐러드 등 젊어 보이는 반찬으로 구성하면 더 잘 팔리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도시락 만들어 주고 싶어요. 하지만 남자보단 여자 중에 요리 잘하는 사람이 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착각이야(여·24): 미래여친기다려 님, 그건 아니죠. 여자라는 이유로 도시락을 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요리도 즐기지 않아요. 여자도 누가 도시락 싸주는 게 좋죠. 전 남자친구한테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도시락을 싸줄 생각이 없습니다. 남자친구가 예전에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사 먹는 게 더 맛있고 노동력도 안 들고 음식을 남겨도 안 미안해도 되잖아요. 물론, 제 주변에 도시락 싸주면서 즐거워하는 언니가 있습니다. 그분은 정말 요리가 즐거워서 하는 겁니다. 모든 여자가 행복하게 요리할 거란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나물좋아(남·26): 누구를 타겟으로 이 도시락을 만든 건지 모르겠네요. 커플이 먹기에도, 솔로가 먹기에도 좋지 않아요…(절레절레) 설마 솔로들이 여자친구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싶어서 이걸 사겠어요? 편의점에서 혼자 이 도시락을 먹으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아마 먹다가 울 수도 있겠네요. 커플들이 이걸 사면 재앙입니다. 피크닉 나가서 둘이서 이거 먹으면 웃길 것 같네요.

20대 남녀, “이성친구에게 도시락 싸줄 의향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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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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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녀 61명(여자 25명, 남자 36명)에게 “이성 친구에게 도시락을 싸줄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전체 응답자의 79%(48명)가 ‘용의가 있다’, 21%(13명)가 ‘용의가 없다’고 답변했다. 여성응답자와 남성응답자의 비율도 80%(20명), 78%(28명)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도시락을 싸줄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상대방이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 “식비를 아낄 수 있어서”, “추억으로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등의 이유를 들었다.

반면 ‘도시락을 싸줄 의향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귀찮아서”, “요리에 흥미가 없어서”, “돈 주고 사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노력과 시간에 비해 반응이 별로라서”, “왜 나만 싸줘야 하는지 이유를 몰라서” 등의 이유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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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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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성친구가 있는 남녀 58명(여성 28명· 남성 30명)에게 실제로 도시락을 싸준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말에는 남녀 간 답변에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응답자의 61%(17명)가 “이성 친구에게 도시락을 싸준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남성응답자 중에선 절반 정도인 33%(10명)만이 도시락을 싸준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이성친구에게 도시락을 싸줄 의향은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긴 비율은 여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친·엄마가 싸준 도시락’이라는 컨셉은 전통적인 성 역할 분담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기업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낮은 편이라 상품을 내 놓을 때 무의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은 별생각 없이 물건을 살지 몰라도 기업은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CU 측은 15일 “상품의 기획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져 안타깝다”며 “여론을 모니터링해 아빠나 남자친구가 싸준 도시락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16일에는 “애초에 아빠, 엄마, 남친, 여친 4종의 도시락을 선보일 예정이었다”고 했다.

[김소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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