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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윤희영의 News English] 23세 때 한국에 와 88세에 떠난 ‘수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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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최정진


“88세로 타계한(die aged 88) 내 언니는 1950년대 말 한국 대구에 가서 길거리 고아(street orphan)들을 데려다 키우는 등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the poor and disadvantaged)을 도우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 언니는 죽을 때도 대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부음 기사(obituary) 하나가 실렸다. 1959년 화물선을 타고 5주간 항해 끝에 한국에 도착한 23세 영국인 처녀 수재나 영거의 죽음(9월 10일)을 알리는 여동생의 부고(訃告)였다.

1936년 명문가에서 태어나(be born into a prestigious family) 옥스퍼드 대학교를 갓 졸업한 재원(accomplished young lady)이었다. 귀족인 아버지는 외무부 차관과 노동당 국회의원, 남동생은 BBC방송 유명 언론인이 됐고, 어머니는 왕족 혈통이었다(be of royal descent).

박해와 순교로 점철된(be riddled with persecution and martyrdom) 한국 천주교 역사 특강을 우연히(by chance) 듣고 감명을 받아 한국에서 봉사하고자 결심했다. 우선 영어를 가르치게 된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 학생들 연습용 피아노가 없다는 말을 듣고 중고 7대를 구해 싣고 오느라 함께 화물선(cargo ship)을 탔다.

대구에 자리 잡자마자 구두닦이 아이 16명을 거처로 데려가(take in shoe-shine boys to her residence) 씻기고 먹이며 그들의 누나가 됐다. 갈 곳 없는 여성들도 돌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옷을 빨 때 뜨거운 물에서 후드득 뛰어오르던 벼룩 떼(swarm of fleas)를 그녀는 평생 잊지 못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의사와 약혼한(be engaged to a doctor) 그녀는 봉사의 기쁨과 사명감을 느끼자(feel joy and a sense of duty in volunteering) 약혼자에게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봉투에 약혼반지(engagement ring)를 넣어 보냈다.

1962년에는 가톨릭여자기술원(현 가톨릭푸름터)을 설립, 미용·양재·자수 등 기술 교육으로 여성들 자립을 도와(help women become self-reliant) 사회복지 초석을 다졌다(lay the foundation for social welfare). 1969년엔 불우한 청소년들(underprivileged youth)과 함께한 경험을 담아 ‘NEVER ENDING FLOWER’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무궁화(無窮花) 말뜻을 영어로 직역한 것으로, 책 표지에 ‘무궁화’라는 한글 제목도 달았다.

1973년 프랑스에 천주교 사도직 협조자 양성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가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며 2004년에 돌아와 영주권을 취득했고(obtain permanent residency), 이듬해에는 대구 명예 시민증도 받았다(be given honorary citizenship). “난 한국과 결혼했어예. 참 잘했지예?” 시댁은 대구라던 그녀는 “‘For God’이 아니라 ‘From God’을 늘 기억하며 산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은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알아듣더라”고 했다.

한국의 양씨 성(surname)을 얻어 ‘양 수산나’로 불렸고, Susannah의 애칭 Susie가 한국어로 ‘수지’로 발음돼 한국 이름은 ‘양수지’라고 했다. 별명은 ‘수지 언니’ ‘수지 누나’.

[영문 참조자료 사이트]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4/sep/23/susie-younger-obituary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ch.html?srl=move&sections=move&idx=254445&process=read&b_div=archbishop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news.html?srl=news&SECTIONS=arch&idx=254437&process=read&gotopage=1&searchPart=&searchStr=

https://londonkoreanlinks.net/2006/11/04/never-ending-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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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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