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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월드 톡톡] "죽으면 아무 말도 못 해… 괴로워도 살겠다" 대지진 후 5년 왕따 남학생, 日本사회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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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거부 끝에 대안학교 옮겨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 후쿠시마 제1원전 앞에 살았던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원전 사고 직후 도쿄 근처 요코하마시로 이사를 갔다가 왕따를 당한 사건으로 일본이 시끄럽다. 아이는 5년간 왕따를 견디다 등교 거부에 들어갔고 중 1이 된 지금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23일 사건이 터진 뒤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나와 아들의 말을 전했다. "자기처럼 왕따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으면 아무 말도 못 한다. 도와주는 어른이 반드시 있다. 힘들어도 살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3월 일본 동일본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福島)를 떠나 요코하마(橫濱)로 이주했다가 5년간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당한 일본의 한 소년이 작성한 수기의 일부. 수기에“지금까지 몇 번이고 죽으려 했다. 하지만 지진 때 많이 죽었으니까 괴로워도 나는 살기로 했다”고 적었다. /마이니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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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아이의 가족은 동일본대지진 5개월 뒤 요코하마에 왔다. 전학 오자마자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의미로 '바이킨(ばい菌·세균)'이란 별명이 붙었다. 5학년 때는 또래 10명이 "후쿠시마 사람은 보상금을 타서 돈이 있을 것 같다"며 게임비·밥값·교통비 등으로 한 번에 5만~10만엔씩 10차례에 걸쳐 150만엔을 뜯어갔다. 견디지 못한 아이는 등교 거부에 들어갔다.

부모가 알고 학교에 상담했지만 학교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화가 난 부모가 작년 12월 요코하마 시교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여기서도 늑장 대응은 똑같았다. 조사 시작 후 10개월 뒤에야 '왕따가 맞는다'는 결론이 났다.

아이의 변호사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가 작년에 쓴 수기 일부를 공개했다. 아이가 5학년 때 당한 일을 적은 글이다. 노트 세 쪽에 띄엄띄엄 쓴 16개의 문장이 일본 사회를 울렸다.

"체육관 뒤에서 3명이 사람 눈 없는 데로 돈을 가져 오라고 했다. 저항하면 또 괴롭힐까 봐 어쩔 수 없었다. (중략) 전학 왔을 때 맨날 걷어채었다. 연필이 부러지고, 노트에 낙서가 돼 있었다. 학교는 믿어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죽으려 했지만 대지진 때 많이 죽었으니까 괴로워도 살기로 했다."

일본 사회는 분노했다. 학교와 시교위는 그제야 늑장 대응을 사과했다. 문부과학성도 재발 방지를 지시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요즘 '자전거 타고 싶다'는 말을 할 만큼 안정을 찾았다"면서 "정부가 움직인 게 기쁘다. 빛을 본 것 같다"고 했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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