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에 오르면 고생했다고 반가이 맞아주는 구상나무들이 허옇게 말라 죽고, 주목 군락지도 사라지고 있다. 한해 절반이 겨울이던 지리산이 따뜻해져서 암자 스님들이 살 만하다 그러더라고,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라고 약초꾼은 얘기했다. 겨울 숲은 그렇게 한 순배 돌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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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성가신 늙은이여라. 평소에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도 번거로워 만나지 않고 부르지도 않겠다고 여러차례 스스로 맹세하는데, 달 밝은 밤이나 눈 내린 아침만은 친구가 그리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마음속으로 묻고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오두막 문을 밀어젖히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거나, 잔을 한 손에 들고 붓을 들었다가 또 내려놓는다. 미치광이 같은 늙은이.’
1687년 마쓰오 바쇼 43살의 겨울, 파초암에서 이렇게 쓰고 뒤에 하이쿠(17음절로 이뤄진 일본의 정형시)를 달아놓았다.
‘술을 마시면
더욱더 잠 못 드는
눈 내리는 밤’
한 손에 하이쿠를 들고 등에 쌀을 지고 산을 오른다. 저 멀리 왕시루봉을 향해 오른다. 찻길은 계곡이 지나는 곳에서 끊어졌다. 철다리 아래로 물이 느릿느릿 흐른다. 물은 폭이 좁은 곳, 비탈진 곳을 지날 때 얼지 않고 좔좔 흐르다가 평평하고 너른 곳에 이르러 졸졸거리다, 얼음 밑으로 들어가 소리 없이 흐른다. 여름날 비 그치고 콸콸 흐르던 것에 비하면 겨울 계곡은 애잔한 대목이 있다. 산죽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응달 사면에는 잔설이 많다. 산길 곳곳에 눈에 꺾인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다. 뿌리째 뽑혀 일자로 뻗은 것은 여름 강풍에 그런 것이고, 대개 ‘설해목’(雪害木)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 잣나무가 많다. 참나무 팽나무 같은 활엽수는 일찍 옷을 벗어 잔해가 별로 없다. 침엽수에는 눈이 덜 쌓일 것 같아도 촘촘한 잎들이 돗자리가 되어 소복이 내려앉기 좋다.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 하지만, 겨울에도 지지 않는 속내에는 볕을 더 받으려는 욕심도 있을 것. 눈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디다 우지끈 부러져 나간 것들, 기둥에서 찢겨 밑동에 누런 맨발바닥을 드러낸 가지들, 아예 절반이 부러져 요절난 것들도 여럿이다. 요새는 간벌이 없어 빽빽한 숲에 키만 크고 몸통은 허약한 나무들이 그러하고, 계곡 근처나 경사에 선 것들이 많이 자빠졌다. 위가 아래로 처박혀 삼각형이 된 나무들, 위를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에 빈 하늘이 열린다. 꼭 우물만 한 작은 하늘이 열려 햇살이 땅에 닿는다. 봄이 오면 그 볕에 도토리나 잣이 새싹을 틔울 것이다.
“머리에 잎 나고 이렇게 무거운 눈은 처음일세”라고 나무가 그러는 것 같다. 첫눈부터 폭설에 습설이라 천근만근이었다.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17년 만의 폭설이라 하니, 조선 때부터 살아온 나무들도 처음 겪는 일이다. 녹을 만하면 또 눈이 오시니 겨우내 이고 지고 살아야 할 짐이다. 폭염 폭우 폭풍 폭설, 근래 날씨가 어지간하면 ‘폭’(暴)자 돌림이다.
“산에 능이가 나와요.” 어제 달궁에서 만난 약초꾼은 그런 얘기를 했다. 달궁은 반야봉 북쪽 줄기 가운데쯤 만수천이 흐르는 해발 700m 심산유곡이다. 그 아래가 뱀사골이다. 늘 물이 있어 버섯과 나물과 약초 같은 임산물이 풍부한 곳. 봄에는 잎을 따고, 여름에 봐두었다가 겨울에 뿌리를 캔다. 이때 앙상한 가지에 기생하는 버섯이 눈에 잘 띈다. “상황이나 말굽, 영지를 주로 따고 재수 좋으면 나무 구멍에서 목청도 따고 그래요. 근데 4년 전부터 능이가 나오는 거라. 능이는 강변 숲에나 있지, 깊은 산중에는 없거든. 우리 어른들은 아예 능이를 몰랐어. 표고가 많이 사라졌는데 갈참나무 굴참나무 바탕에 능이가 올라오더라고.” 가을에 땄다는 능이, 버섯이 세숫대야만 하다. 능선에 오르면 고생했다고 반가이 맞아주는 구상나무들이 허옇게 말라 죽고, 주목 군락지도 사라지고 있다. 고사목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인데 일찍 죽으니 죽어서 더 오래 살겠네 한다. 약초를 많이 자셔서 그런지 입에서 법문이 나온다. 한해 절반이 겨울이던 지리산이 따뜻해져서 암자 스님들이 살 만하다 그러더라고,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라고 약초꾼은 얘기했다. 겨울 숲은 그렇게 한 순배 돌고 있다.
적설과 결빙으로 성삼재 넘어가는 찻길이 막혔다. 봄이 되어서야 풀릴 거라 한다. 산의 서편을 크게 돌아 운조루 지난 어디에 차를 놓고 남사면을 오르는 길. 독살이 암자 갈 때는 늘 저어된다. 홀로 맑혀놓은 우물을 흐려놓지 않을까, 한다. 그때 꺼내는 것이 바쇼의 저 대목. 번거롭다 하다가도 달 밝은 밤이나 눈 내린 아침은 어쩔 수 없는 것, 도를 얻었다 하여도, 오두막 문을 밀어젖히고 밖을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멀리서 초록색 양철지붕이 보인다. 아직 멀었는가 싶을 때 꼭 한 귀퉁이 돌아 나오는 암자. 스님, 지게 지고 나무 주우러 나서는 길이다. 동짓달에 큰 지게 서너 짐 해 놓았고, 이제 마른 것 한두 짐이면 땔감 걱정은 없다. 생가지는 산 위로 가서 지고 내려오고, 마른 가지는 산 아래로 가서 지고 올라온다.
“일년 내내 불을 때요. 해 질 무렵 하루 한 번, 여름에도 추워서 불을 때는데 작년 여름에는 한달이나 불을 안 때고 살았어요. 처음이야.”
한 방에서 부처님과 스님 단둘이 사는 인법당, 손바닥만 한 불전에 보시 올리고, 삼배하고, 앉은 방바닥이 뜨근뜨근하다.
요새 절에 중이 없다는 얘기, 벌써 묵은 얘기다. 전에는 한해 출가자가 수백이었는데 교구본사인 화엄사에 행자가 한명도 없다고 한다. 조계종이 가진 것은 얼추 땅 1억평에, 사암(사찰과 암자) 3천에, 중 1만2천이다. 조계종 의회인 종회에 따르면 빈 절이 490여곳에 달한다. 다섯집 건너 한집이 비었다. 제일 먼저, 찻길이 끊겨 걸어 올라야 하는 암자에 사람이 없다. 신도가 없으니 중이 없을까, 중이 없으니 신도가 없을까? 오늘 온 암자는 귀한 암자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잖애? 아직 꿀이 남아 있는 거라. 바닥에 남아 있어. 그것 핥아먹느라 정신이 없어요. 뒤에 뱀이 오는 줄도 모르고, 우선 달거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탐진치(貪嗔癡) 삼독을 중생의 버르장머리라고 옛날 어른 스님들이 그랬어요. 그 버르장머리를 중생이 아닌 중이 하고 있는 거라. 누가 누구에게 귀의하겠나? 폭삭 망해야 돼요. 그래야 정신 차리고 일어서지.”
산중암자, 점심 공양 때가 되어 밖에 나오니, 그 말처럼 춥다. 절 사진 찍는 이, 절 책 내는 이, 동행해서 입이 넷이다. 밥이 부족해 곤로에 라면 5개를 끓였다. 찬은 김치 하나. 큰 절 김장 때 일손 보태주고 얻어온 것이다. 양배추는 없냐고 물었더니 스님이 웃는다.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양배추, 맛있어서가 아니라 오래 안 상해서 그런다고, 전에 왔을 때 그랬던 기억이 난다.
장 보고, 일 보고, 아무리 안 써도 한달에 40만원은 든다. 꼭 오는 신도 몇분이 있어 ‘중론(中論)으로 읽는 반야심경’을 함께 얘기하고, 그리고 보시를 놓고 간다. 중론으로 읽든 니까야(초기 불교 경전)로 읽든, 경의 요체는 ‘아공’(我空)이라는 말씀. ‘내가 없어야 네가 보인다’ 정도로 이해한다. 연기(緣起)도 공이라는 그 뒷장으로 넘어가면 어렵다.
‘무상(無常)이 역동(力動)’이라는 스님 말이 입에 붙는다. 세월이 무상하다, 그런 말 뒤에는 식어가는 재 같은 감정이 따라오고, 벌써 인생의 막바지인가 하면서 우울하다. 그런데 언제 무상하지 않은 때가 있었냐 한다. 무상은 항상 하지 않음, 즉 변화이니, 사춘기도 무상이고 갱년기도 무상이라. 무상이야말로 살아있는 증거 아니냐고 한다. 어느 길로 가느냐는 늘 나의 문제일 뿐, 무상 그 자체는 생동이고 역동이라는 말씀.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틀린 말 같기도 하고, 본래 절의 말이 그렇다. “중이 그리워서 오겠어요? 산이 그리워서 오는 거지.” 스님은 그러면서 속가에 내려와 오래 살았으니 얼른 중들이 다시 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지리산에 와서 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평생 산에서 산 두 사람, 약속이나 한 듯 이름 같은 것 절대 내지 말라 한다.
하산 길 돌아보니 스님, 마당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 사람, 나무 한그루, 양철지붕 너머 흐린 하늘, 그 사이로 겨울바람 지나간다. 그리움에서 외로움으로 돌아가는 시간, 하이쿠 한 대목 같다.
‘파 하얗게
씻어서 세워놓은
추위여’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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