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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민주주의 백신’ 교육을 찾아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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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화물트럭 등을 타고 상경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을 경찰이 막았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2024년 12월22일 오전 서울 관악구 과천대로 남태령고개 인근에 모여 경찰에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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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여름밤이 짧다고 하나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무척 길 수도 있다! 너희는 지금 그걸 경험할 거다. 알겠나!” 대위 계급장을 단 중대장은 이 말을 마치자마자 우리에게 깍지를 낀 채 엎드려뻗치라고 명령했다. 1986년 초여름. 대학생 ‘전방 입소 거부 투쟁’을 하느라 며칠간 교내 농성을 벌이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고 강원도 소재 군부대에 들어갔던 날 밤이었다.



서치라이트를 비춘 연병장에서 2시간 넘게 ‘굴렀다.’ 같은 날 오전, 학교에서는 투사였는데, 불과 몇시간 뒤에는 달밤에 얼차려 받는 병사 신세였다. 그날 밤 나는 왜 그대로 주저앉아 “이런 기합은 결코 받을 수 없다. 퇴소를 요구한다”고 외치지 못했을까?



한달 남짓 이어지는 내란 국면에서 두가지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하나는 12월21일 남태령에서 벌어진 ‘전봉준 투쟁단’ 지지 시위였다.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힌 농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2030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발언 희망자들이 무대에 올라섰다. 스마트팜 위주 농업 정책을 비판한 청년 농민,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중도 입국 중국 청년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밤새 이 장면을 지켜본 한 참가자는 “농민, 여성, 청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가르쳤다. 마치 28시간짜리 학교가 열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시사인 2025년 1월6일).



다른 한 장면은 한남동 관저 주변 거리에서 눈비 맞아가며 윤석열 체포를 외치던 ‘키세스단’이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빛 조각상이었다. 김밥, 핫팩, 은박 담요를 시민들끼리 계속 나누었고, 무명의 지원자가 제공한 푸드트럭에서는 음식이 남아돌 정도였다. 난방 버스는 열대가 넘었고, 집회를 마친 이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정돈했단다. 이들의 시위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동안 후배 세대를 바라보며 몰래 쏘아 보냈던 내 싸늘한 눈빛이 부끄러웠다. 미안해서 흘린 눈물 위에 대견해서 흐르는 눈물이 덧보태어졌다.



대학 2학년 때 조악한 인쇄 품질의 자료집 한권을 읽었다. 거기엔 1980년 5월27일 광주민주화운동 마지막 날 계엄군들이 진입할 당시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시민 기동타격대’ 대원의 나이와 직업이 실려 있었다. 양화공, 양복점 재단사, 3수생, 건축 일용직, 덤프트럭 조수, 중식당 요리사들로 평상시 여느 동네의 이웃들과 다름이 없었다. 이 엄연한 사실이 대학 시절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너는 어려운 이들 곁을 떠나지 않고 평등 세상을 일구기 위해 너 자신을 밀고 나갈 수 있겠느냐?’



1979~1980년 쿠데타와 계엄의 주역은 육사 출신 고급 장교와 장성들이었다. 2024년 12월 내란 사태의 주범들은 서울대, 육사, 경찰대의 수석 졸업자이거나 수석 입학자들이었다. 국가적 변란을 촉발한 자들은 상층 핵심 헛똑똑이 세력이고, 이에 맞서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한 상대는 시대를 초월해 예외 없이 평범하거나 소외를 겪는 시민들이었다.



나는 힘세고 조직화된 권위주의 세력과 집단이 두려웠다. 입으로는 ‘대동 세상’을 외쳤으나 정작 내 곁에 있는 동지들을 굳건하게 믿지 못했다. 아니 무엇보다 굳은 심지가 내면에 붙박이지 못했다. 40년 전 그날, 어두웠던 연병장을 박차고 나오지 못한 심리적 배경이다.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는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신념, 정의감, 헌신과 같은 마음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최근 교육전문가들의 글을 보면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위 문화와 저항 정신의 표출을 민주주의 교육의 성과로 귀속시키고 있다. 더 입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생각해보자. 내란 사태를 빚어낸 주역들도 우리가 유지해온 교육체제에 가장 잘 적응한 이들이었다. 반례도 있다. 나는 박정희 시대 ‘유신교육’과 ‘반공교육’을 8년 동안 철저하게 받았다. 하지만 독재 세력이 주입했던 방향과 180도 다른 입장에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본다.



교육이 다음 세대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문화를 바꾸며, 시대정신의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은 맞다. 다만 민주시민 세력의 형성에는 학교교육보다 더 넓고 복잡한 차원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내란 세력을 잠재운 뒤에 이 지점을 더 탐구해봐야겠다.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또다시 거듭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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