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이 2022년 11월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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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영 | 자립준비청년
최근 주말마다 예비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진주, 김해, 고창, 전주, 부산으로 향했다. 예비 자립준비청년은 보육원, 그룹홈 등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며 퇴소와 자립을 앞둔 보호아동을 말한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해가 지날수록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정책과 지원 사업이 많아졌음에도 정작 당사자인 보호아동들은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 고민을 듣고 자립 멘토로서 퇴소 뒤 내가 겪은 여러 시행착오와 자립 노하우를 전하며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으나, 내 경험만으로는 해결해주기 어려운 고민을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이 많은 지역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멘토링할 때 종종 듣는 말이다. 어느 지역의 시설에서 퇴소하는지에 따라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커뮤니티 활성화 등 지원 제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주지가 자립 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도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지방과 수도권 간 지원 사업 및 당사자 커뮤니티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지역의 시설에 입소하고 퇴소하는지 청년들이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상황에서 거주지에 따른 지원 격차는 당사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그러나 보호아동과 자립준비청년들은 전국 어디든 존재한다. 어디에서 자립을 시작하든 필요한 지원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형평성을 고려하되 각 지역의 사회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자립교육이나 맞춤형 자립지원 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각자 지내는 지역에서 의미 있는 관계망을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자립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경계선지능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도 자립교육이 괜찮을까요?” 보호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자립 멘토링을 신청받을 때 양육자 선생님들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최근 경계선지능장애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아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으며, 이들의 자립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사기를 당하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고 자기소개서, 보고서 작성 등 서류 작업이 필요한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경계선지능·경도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립교육에는 더욱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의 자립교육은 일방적인 강의 형태가 많다. 이는 실생활에서 유연하게 적응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다. 밀착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자립 커리큘럼과 단계별 자립 로드맵이 세심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단순히 지원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것을 넘어 당사자의 관점에서 지원 제도를 설계하고 지원 제도를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필요하다.
한 친구는 멘토링이 끝난 뒤 헤어질 때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이제야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눈망울에는 자립 초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외로웠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 또한 자립이 코앞에 닥치고서야 자립의 무게를 느꼈다. 내가 자립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에게 자립은 어렵다. 보호와 안전의 이유로 수많은 규칙 속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자립은 어려워진다. 아이들이 느낄 자립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서 이들을 위한 제도는 당사자의 관점이 반영되고 지역 간 격차 없이 균등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눈높이에서 설계된 제도들이 생긴다면 더 촘촘하게 지원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의 관심과 노력으로 더욱 촘촘하고 세심한 맞춤형 제도가 마련되어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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