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2’.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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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울한 극장가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활기를 회복하리라던 기대는 깨졌다. 연 관객 2억명 회복 목표보다는 줄어든 전체 시장의 파이를 상수로 두고 다시 흥행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취향은 까다로워지고 검증된 작품을 찾는 관객이 늘면서 재개봉 영화가 많아졌다. ‘믿고 보는’ 속편의 강세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극장가를 지배한 2024년의 특징이다.
정체된 시장, 줄어든 대작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극장 전체 관객수는 1억1012만1336명이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지난해 같은 기간 1억843만5605명보다 200만명도 늘지 않았다. 2억400만명을 넘겼던 코로나 직전 2019년 같은 기간보다 9400만명가량 적은 수치다.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한 베트남 등 아시아 일부 국가는 물론이고 80% 정도 회복한 북미 시장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2013년부터 시작된 연 관객 2억명 시장이 코로나로 무너진 뒤 고착되는 양상이다.
영화 ‘파묘’. 쇼박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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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대작 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올해는 대작 영화들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올해 양대 천만 흥행작인 ‘파묘’와 ‘범죄도시4’는 각각 순제작비 100억원대 초반의 작품이다. 누적 관객수 750만명을 기록하며 올해 한국 영화 흥행 3위에 오른 ‘베테랑2’도 마찬가지다. 대작 영화의 기준이 되는 순제작비 100억원을 넘는 작품들이지만 최근 순제작비 200억~300억원, 손익분기점이 500만명을 넘는 영화들이 급증한 데 견주면 조촐한 규모다. 특히 달라진 건 ‘텐트폴 전쟁’으로 여겨지던 여름 시장이다. 2023년만 해도 순제작비 200억원에 이르거나 이를 넘기는 한국 영화 4편이 경합했지만 올해는 470만 관객을 동원한 ‘파일럿’을 비롯해 ‘탈주’ ‘핸섬가이즈’ 등 흥행작들이 순제작비 100억원 이하의 중급 영화들이었다.
영화 ‘범죄도시4’.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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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 강세와 재개봉 릴레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재편되기 시작한 영화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검증된 영화’의 선호 현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지인 추천 등의 입소문이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지면서 관람 패턴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개봉 전 관심작을 가장 먼저 가서 보려는 영화팬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입소문 등 화제성이 커진 뒤에 영화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가 지난 10월 내놓은 2024 영화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보면 2019년에는 평균 관람시점 10.6일에서 2023년 15.5일로 5일가량 미뤄졌다. 이처럼 ‘검증된 영화’에 대한 선호는 속편 강세와 재개봉 영화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지난 19일 기준 국내 극장 흥행작 10편 가운데 5편이 속편이다. 한국 영화 ‘범죄도시4’ ‘베테랑2’, 외화 ‘인사이드 아웃 2’ ‘모아나2’ ‘듄2’ 등이다. 전편의 흥행에 대한 신뢰가 속편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 것이다. 코로나 때 집 나간 집토끼를 다시 불러모으는 속편 전략은 한국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더 강세를 보였다. 20일 전세계 영화 흥행을 집계하는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를 보면 1위 ‘인사이드 아웃 2’부터 7위 ‘쿵푸팬더4’까지 모두 속편이며 전체 20위에서 속편이 아닌 영화는 ‘위키드’(8위)와 ‘우리가 끝이야’(15위), ‘와일드 로봇’(17위) 3편뿐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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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극장에서는 이와 함께 과거 흥행작과 명작들의 재개봉이 급증했다. 이미 작품성이나 흥행성이 검증됐기 때문에 마케팅비 역시 신작 영화보다 현저히 적게 들어간다는 점에서 극장과 배급사, 그리고 관객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2004년 작인 로맨스 드라마 ‘노트북’은 지난 10월 재개봉해 19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고, 2014년 작 ‘비긴 어게인’은 23만명을 돌파했다. 웬만한 신작 영화보다 검증받은 재개봉 영화들이 높은 좌석판매율을 기록하면서 ‘개봉 1주년 기념’ 재개봉도 속속 등장해 일본 로맨스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첫 개봉 때보다 3배나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동안 인기 가수들의 공연 실황 영화를 개발 상영하는 등 빈 극장을 채우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멀티플렉스들도 단독 재개봉 작품들을 늘려가며 멀티플렉스 씨지브이(CGV)는 아예 한달에 한편씩 작품을 선정해 재개봉하는 정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만명, ‘퍼펙트 데이즈’와 ‘추락의 해부’ 10만명 돌파 등 예술영화의 선전도 양적·질적으로 정체된 상업영화에 싫증을 느끼면서 국외 유수 영화제 등에서 검증된 작품을 선호한 관객들의 취향 변화와 맞물려 성과를 거뒀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찬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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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 부과금 폐지와 위기 극복 위해 손잡은 영화인들
지난 10일 극장 관람료에 포함됐던 영화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입장권 가격의 3%에 해당하는 부과금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영화발전기금은 2007년 시행 뒤 한국 영화 창작과 개봉, 수출 지원 등에 가장 중요한 예산으로 쓰였다. 영화인들로서는 영진위의 지원 예산이 이미 깎인 상황에서 더 직접적인 타격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편 침체한 영화계가 출구를 좀처럼 찾지 못하면서 지난 7월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가 출범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등 영화 단체 18곳의 연합체인 영화인연대는 2000년대 초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 투쟁 이후 최대 규모로 영화인들이 합심한 단체라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한국 영화 산업을 약화시키는 홀드백(극장 개봉 뒤 오티티 등 다른 플랫폼에서 방영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문제와 스크린 독과점, 관람료 현실화 등에 대해 다양한 통로로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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