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4일 새벽 국회로 진입하려는 군 차량을 가로막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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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쩍쩍 갈라질 판이다. 2016년처럼 촛불 들고 몰려나오지 않겠나?”(국민의힘 당직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해제 요구를 수용하며 상황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4일 오전, 국민의힘 의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전날에 이어 아침 8시부터 4시간 가까이 의원총회에서 당내 논의를 지켜본 의원들은 의총이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 중앙홀에는 전날 계엄군 진입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가구와 집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계엄군의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막기 위해 국회에 있던 소파, 의자 등을 끌어모아 쌓은 바리케이드의 흔적이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들에게 “오늘 별도의 지침이 있기 전까지 전원이 국회 경내에 비상 대기해주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이날 국회 사무처 설명을 들어보면 계엄군은 3일 밤 11시48분부터 4일 새벽 1시18분까지 헬기편으로 들어온 230여명과 담장을 넘어 들어온 50여명을 더한 280여명이다. 이들은 3일 밤 11시55분쯤 본청 앞에 도착해 국회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실에 근무하는 한 당직자는 “무장한 군인들이 당대표실로도 침입하려고 했었다”며 “블라인드를 올려보니 창문 앞에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원내대표실에서는 ‘창문 깨고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 진입을 위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깼다. 유리창과 창문턱에 있던 화분도 박살이 났다.
본회의장 앞에서 대기하던 야당 의원 보좌진은 계엄군 진입이 본격화되기 전인 11시30분부터 본청의 각 사무실에 있는 소파와 테이블을 끌어와 외부와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진출입을 봉쇄했다. 쉽게 깨질 수 있는 유리 창문, 외부와 연결된 계단 등에도 인원을 나눠 배치했다. 국민의힘 당직자들 일부도 소화전에 비치된 소화기를 뿌리며 계엄군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 국회 사무처는 충돌로 인한 불상사를 우려해 본청 안 복도와 모든 방의 불을 켜도록 지시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4일 0시30분쯤 본회의장에는 가결정족수를 넘긴 인원이 모였다. 0시21분 국회의장이 착석했고, 새벽 1시에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상정해 재석 190인 중 190인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환호성은 짧았다. 의원과 당직자, 보좌진 들은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뒤에도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직접 선언하기 전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시민과 군경의 충돌과 실랑이가 이어진 것은 국회 바깥도 마찬가지였다. 경찰력에 의해 국회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문 이용이 막힌 건 3일 밤 10시50분부터였다. 계엄 선포 뉴스 속보를 본 여야 의원과 당직자들이 잇따라 국회로 모여들었지만, 경찰은 문을 막고 길을 터주지 않았다. 일부 민주당 당직자들이 “국회의원은 들여보내줘야 하지 않냐”고 고함을 치며 항의했으나, 경찰은 “안 된다. 저희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며 맞섰다. 결국 정문에서 출입이 막힌 의원, 당직자들은 국회 담을 넘기 시작했다. 보좌진과 취재진은 물론 의원들까지 경찰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 담을 뛰어넘었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를 포함해 60~70명의 의원이 담을 넘었다고 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당사로 오라 그래서 갔는데 티브이 속보에 본회의 개의한다고 뜨더라. 그래서 내가 여기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서 담 넘어서 국회로 갔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긴급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5천명 넘게 국회 앞으로 모여들어 ‘윤석열 정부 퇴진’과 ‘윤석열 구속’을 외치며 국회 경내로 진입하려는 군 차량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이재명 대표는 4일 낮 12시 국회 본청에서 열린 보고대회에서 “시민의 활약이 국회를 지켰다”고 평했다.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계엄군의 국회 경내 진입, 본청 진입 장면이 담긴 52초 분량의 국회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계엄군을 태운 헬기가 국회 경내에 연이어 착륙하는 모습이 담겼다. 김 사무총장은 “이번 계엄 선포로 발생한 물리적 피해와 손실을 철저히 파악해 위법적인 행위에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배상 문제 등 법적으로 허용한 모든 범위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는 이번 비상계엄 대치 과정에서 국회 직원도 다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은 “정확한 부상자 수와 다친 정도를 집계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계엄 선포 후 국회경비대가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들의 출입을 막은 것과 관련해 “국회경비대의 임무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 문제를 꼼꼼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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