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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계엄 ‘육사 4인방’ 핵심 역할…합참의장은 사전에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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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왼쪽부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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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깜깜이’투성이다. 3일 밤 10시28분부터 4일 새벽 4시27분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 윤 대통령의 계엄령 해제와 계엄군 철수에 이르는 6시간 동안 발생한 거의 모든 일은 사실관계가 불명확하다. 이번 비상계엄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가를 핵심 잣대는, 현 상황이 계엄법에 명시된 선포 요건에 부합하고 윤 대통령이 선포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여부인데, 윤석열 정부가 4일 하루 종일 입을 꾹 닫고 설명을 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대통령실과 국방부 극소수 인원 외엔 ‘이번 비상계엄을 왜, 어떻게 준비하고 선포했는지’ 알지 못했다. 계엄법은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계엄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날 새벽 “김용현 국방장관이 계엄 선포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확인한 것 외에는 공개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계엄을 선포하기 위해선, 국방부가 장관 주관 비상대책회의에서 계엄 선포 요건 충족 여부를 ‘검토’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협의’하고, 계엄 선포가 필요할 때는 국무총리 ‘보고’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빈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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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계엄군의 국회 진입 과정에서 쌓은 바리케이드와 깨진 유리창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회 비품창고의 문짝이 떨어져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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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논의의 초기 단계라 할 국방부 비상대책회의에는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 육군참모총장, 방첩사령관,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국방부 정책실장, 합참 정보본부장·작전본부장 등이 참석해 △계엄 시행 여부 △계엄 종류(비상계엄, 경비계엄) 결심 △계엄 시행 지역(전국계엄, 지역계엄) △계엄사령관 추천 건의 등을 논의하는데, 국방부는 이날 저녁까지 국방부 비상대책회의 개최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가 전국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할 때는 관련 상황(경찰력으로 치안 유지가 어려운 사회 혼란 등)을 먼저 제시하고 검토 결과(공공질서 회복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를 바탕으로 결론(전국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 문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결재를 받는다. 국방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할 판단의 근거인 검토 결과와 결론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계엄법상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나, 대통령실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개최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상당수 장관들은 계엄 선포의 합법성을 가르는 절차적 정당성의 핵심 요건인 국무회의 참석 여부를 묻는 한겨레 질의에 “확인해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망국의 원흉” 같은 표현이 담긴 비상계엄 선포 긴급 담화문을 화난 표정으로 읽었다. 이런 ‘거친’ 표현들은 대통령실 참모들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했다면 나올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표 직전까지 대통령실에서도 극소수 인사 외엔 비상계엄 선포 움직임을 몰라,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밤 11시 이후에야 급히 대통령실로 복귀해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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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비상계엄령 해제를 가결한 4일 새벽 서울 용산구 국방부로 김용현 국방장관(가운데)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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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군인들을 국회에 투입한 과정도 의문투성이다. 공식적으로 계엄 업무를 담당하는 합참의 ‘계엄 시행계획’에는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으로 계획되어 있으나 윤 대통령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다. 박 총장은 작전병력을 지휘하는 군령권이 없어 합참의장, 국방장관으로부터 병력 출동 승인을 받아 시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김명수 합참의장은 계엄 발표 전까지 어떤 지침도 받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김 의장은 3일 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발표한 뒤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김 의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북 경계 태세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군 안팎에서는 김 장관이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김 의장보다는 육사 선후배들로 계엄 지휘부를 꾸리려고 했다고 보고 있다. 김 장관(육사 38기)과 박 총장(46기),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47기),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48기) 등 비상계엄 국면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 이들은 모두 육사 출신이다. 3일 밤부터 특전사 예하 707특수임무단과 제1공수특전여단, 수방사 소속 군사경찰특임대 병력 280여명이 국회에 투입됐다. 곽 특전사령관과 이 수방사령관은 계엄령 준비 모임으로 논란이 됐던 김 장관의 ‘경호처장 공관 모임’ 참가자다. 이 모임이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의 출신 고등학교인 충암고 선후배들로 꾸려진 군내 ‘충암파’ 논란이 확산된 바 있다. 김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다.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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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경내에 투입된 특전사 707특임단과 1공수 병력, 수방사 군사경찰 등 280여명이 맡은 구체적인 임무는 공개된 바 없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1공수는 국회 외곽 경계 △707특임단은 국회 본청 진입 및 요인 체포를 통한 국회 본회의 무산 등의 임무를 맡았다고 주장했다. 군 병력의 국회 진입 목적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 차단’이라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극소수 인원이 투입 부대를 며칠 전부터 선별했고 지난 2일부터는 일부 부대가 훈련과 평소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출동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한 예로, 경기 이천에 있는 특전사 707특임단은 3일 밤 출동 직전 보안 유지를 위해 휴대폰을 제출한 뒤 헬기를 타고 국회에 투입됐다고 한다.



이들 말고도 국회에 투입되거나 현장에 출동하진 않았지만, 전방 보병 부대와 다른 공수여단이 출동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유사시 평양에 침투하는 참수부대로 알려진 충북 증평 주둔 13공수여단도 출동 대기를 유지했으나 실제 출동은 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리는 707특임단과 13공수는 임무 특성상 전투력이 강한데다 보안 유지가 쉬워 비상계엄 때 투입 부대로 선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1979년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반란인 12·12 때 서울에 들어와 광화문 일대를 점령했던 9사단(당시 노태우 사단장) 소속 전차부대도 출동 대기 상태였으나 실제 출동은 안 했다고 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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