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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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정말 전쟁 중인 나라가 맞나.’ 텔아비브 도심을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따사로운 지중해의 태양,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힙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 골목. 유럽의 여느 휴양지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다. 차량으로 불과 한 시간 반 걸리는 북부 도시 하이파에 매일 헤즈볼라 로켓이 수십 기씩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유가 넘치는 것 같은 이곳에서도 전쟁을 실감하는 때가 있다. 공습 경보가 울릴 때다. 길 가던 모든 사람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리고, 이윽고 사방에서 사이렌이 울리면 도시는 일순간 ‘전시 상황’에 돌입한다. 행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일제히 달리기 시작하고, 운전하던 이들은 도로에 차를 버리고 뛴다. 방공호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북적이던 거리가 불과 수십 초 만에 개미 한 마리 지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지고, 이윽고 ‘아이언돔’이 미사일을 요격하는 소리가 ‘펑’ 하고 들려오면 그제야 깨닫는다. ‘이게 현실이구나.’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드는 일도 익숙해지면 ‘일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의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누구도 예외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방공호를 찾아 달려가는 훈련이 철저히 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는 지역에 따라 15~90초 안에 방공호를 찾아 피신하고, 경보가 멈추고 나서도 10분 더 기다렸다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네 살짜리 아이도 안다. 요격률 99%인 아이언돔을 모두가 신뢰하지만,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아이언돔이 지켜주겠지’ 하고 자리에 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득 지난해 5월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북한이 군사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서울시에서 ‘서울 전역에 경계 경보 발령’이라며 재난 문자를 보냈고 민방위에서 경고 방송과 경보를 울렸다. 잠에서 깬 시민들은 난데없이 울린 사이렌에 우왕좌왕했다. 출근을 해도 되는 건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소셜미디어를 붙잡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후 경계 경보는 오발령으로 정정됐지만, 실제 상황이었다면 참극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달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는 ‘한국에서 전쟁 재발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렸다. “북한이 향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극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저 주장에 불과할 수 있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다. 전시 국가의 국민이 공습 경보에 어리둥절해 한다는 건, 위급한 상황에 평소 대처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이다. 8000km 떨어진 타국에 와보니 우리의 안보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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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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