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0 (수)

[태평로] 포스텍의 ‘대치동 키즈’ 배제 입시 성공했으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내년부터 10시간 집중 면접으로

사교육 안 받은 인재 뽑아보겠다”

사교육 쪽에선 “불가능할 것”

꼭 성과 내고 노하우 전파해야

역대 정권마다 사교육을 억제하려고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다. 교육 당국만 아니라 대학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수만 보고 학생을 뽑았다가 이들의 무기력함에 질린 대학들이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재빨리 대응하는 사교육에 연전연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텍이 ‘대치동 키즈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했다. 2026학년도부터 전체 모집 인원 370명 중 60%는 면접 반영 비율을 현행 33%에서 50%로 높여 사교육에 찌든 학생들을 배제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은 1인당 30분인 면접 시간을 무려 10시간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일단 60%로 시작하지만 곧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포스텍 김성근 총장은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지금의 입시 제도는 문제 풀이 숙련공만 키운다”며 “새로운 입시 제도를 통해 사교육으로 가공되지 않은 인재를 선별하겠다”고 했다.

대학들이 선행학습 등 사교육으로 성장한 학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학생들이 입학 후 급격히 학업에 흥미를 잃으면서 3학년쯤부터 일반 학생들에게 역전당하는 패턴을 보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포스텍은 자기 주도로 진로를 탐색해보라고 노벨상 시상식, 미국 CES 박람회 참석 등에 1인당 4년 동안 1000만원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사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이런 이벤트 참석은 물론 사소한 학교 생활까지 부모와 상의하려는 경향이 강해 제도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려웠다는 것이 대학 얘기다.

이 같은 포스텍의 시도에 대해 사교육 관계자에게 성공 여부를 물어보았다. 그는 “포스텍 의도는 좋지만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포스텍 갈 정도면 사교육 안 받은 애들이 없을 것이고 그 면접에 대비하는 사교육이 나올 텐데 어떻게 고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포스텍 관계자도 “우리도 성공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대입 제도로는 원석같이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뽑기 어려우니 지원자를 앉혀놓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텍은 인근 대학 교수 등 외부 인사들도 면접 위원으로 위촉해 공정성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길 것이라고 했다. 그런 공정성도 놓치면 안 되겠지만 얼마나 사교육 껍질을 벗겨내고 진짜 실력 있는 학생을 가려내느냐가 핵심일 것이다. 참고할 만한 얘기들이 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선행학습이 만든 ‘무늬만 영재’를 뽑지 않는 방법으로 “학생에게 질문해 과도한 선행학습을 했으면 뽑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고교 과정인 영재학교 입시에 관한 얘기지만 대학 입시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서울대 의대 입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의대는 일정 수준의 수험생은 더 이상 점수를 보지 않고 면접으로 사실상 당락을 결정하는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이 면접을 도입한 후 수능 만점자를 탈락시킨 전례가 있다.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니 장시간 면접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지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물론 사회 전체가 사교육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학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스텍의 시도 자체가 반갑고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포스텍이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어 다른 대학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면 우리나라 사교육 풍토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김민철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