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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트럼프 보란듯… 시진핑, 英·호주 정상과 관계 개선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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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총리와 6년 8개월 만의 회담 “양국 전략적 동반자 관계 고수”

“중국과 영국의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음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갑시다.”

지난 18일 20국(G20) 정상 회의가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은 지난 8월 스타머 취임 직후 통화했을 때만 해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중국을 바라보길 바란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는데, 몇 달 만에 관계 개선을 먼저 입에 올린 것이다. 양국 관계는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2022년 영국 공공기관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 의혹 등으로 최근까지 줄곧 싸늘했다. 양국이 정상회담을 한 것 또한 6년 8개월 만으로, 2018년 2월 테리사 메이 총리 시절 이후 처음이다. 이날 시진핑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도 회담을 갖고 “성과가 풍성한 중·호 전면적 전략 파트너 관계를 건설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시진핑이 ‘트럼프 2기’를 앞두고 다자 외교 무대에서 미국의 우방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기간인 15~16일엔 한국·일본·뉴질랜드 정상들과 회담했고, G20 정상 회의가 열린 18일엔 호주·영국 정상을 잇따라 만났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의 재집권에 따라 미국 동맹 체제가 느슨해지고 ‘대중 견제 전선’이 약화될 것을 예상하고 이 국가들에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이번 ‘출장’ 기간에 한국(회담 시간 29분), 일본(35분), 뉴질랜드(30분), 호주(30분), 영국(20분) 정상들에게 쏟은 시간은 총 144분이다. 메인 이벤트인 미·중 정상회담에 들인 시간(100분)보다 훨씬 길다.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와는 안보 대화체인 쿼드(Quad)를, 영국·호주와는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와는 정보 공동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를 구축해 연대하고 있다. 시진핑이 지난달 23일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 회의를 계기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5년 만에 양자 정상회담을 한 것까지 포함하면 최근 한 달 사이 중국은 캐나다를 제외한 모든 미국의 주요 안보 협력국과 정상회담을 가진 셈이다.

시진핑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트럼프 재집권 시기 초반에 ‘미국 진영’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내세우는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야 트럼프의 공세에 대응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의 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우신보 푸단대학교 국제문제연구원장은 최근 홍콩에서 열린 강연에서 “내년 초반 6개월이 중·미 관계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진핑은 이번 다자 외교 무대에서 다른 나라 정상들과 만났을 때 과거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협력의 조건을 걸거나 ‘레드라인(한계선)’을 재확인하기보다 관계 개선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스타머 총리에게 “중국과 영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고수해야 한다”면서 “양국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정치적 상호 신뢰를 심화하자”고 했다. 스타머도 “영국은 중국과 굳건한 관계를 맺길 바란다”면서 조만간 베이징이나 런던에서 양자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의 회담에서 시진핑은 “중국과 호주 사이에 근본적인 이해 충돌이 없다”면서 “중국과 호주는 경제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앨버니지도 “양국 관계 안정화에 고무적인 진전이 있었다”며 “무역이 자유롭게 흘러 양국과 국민, 기업에 이득이 되고 있다”고 했다. 양국은 2018년 반중(反中) 성향인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집권 이후 안보·통상 문제로 으르렁댔지만, 지난해 왕이 외교부장(장관)이 7년 만에 호주를 방문한 것을 기점으로 관계 회복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시진핑은 북·러 군사 협력과 관련해 “중국이 건설적으로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중국 역시 역내 정세의 완화를 희망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과거 북한을 감싸고 한국에 남북 관계 개선 책임을 돌린 것과 미묘하게 달라진 입장을 밝힌 것이다. 시진핑은 또 “양국의 고위급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투자와 사업을 환영한다”고 했다. 시진핑이 먼저 “여론계, 학술계와 지방, 특히 청년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시진핑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APEC 정상 회의를 계기로 첫 만남을 가졌다.

중국이 트럼프 집권기 동안 국제사회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전통적 우호국이었던 북한, 러시아와의 밀착을 꺼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명시된 ‘원조(援助)’를 넘어선 ‘참전’ 양상을 보인 것이 중국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중국의 가치 체계가 다른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8일 스타머가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反中) 매체인 빈과일보의 창업주이자 2020년부터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금된 영국 시민권자 지미 라이를 언급하며 홍콩 인권 문제를 제기하자 중국 측은 취재진을 회담장에서 나가게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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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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