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덴마크 빅토리아 키예르 타일비그가 지난 16일(현지시각)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제73회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영예의 우승을 차지한 후 왕관을 쓰고 있다. 타일비그는 덴마크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발 소유자로는 20년 만에 미스 유니버스 정상에 올랐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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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인 대회를 좋아한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놈 같으니”라며 화를 내는 독자도 계실 것이다. 요즘 미인 대회는 비판 대상이다. 획일적 미의 기준을 강요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전파하며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이다. 옳다. 틀리는 말 하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미인 대회를 여전히 몰래 즐긴다. 말해 버렸으니 더는 ‘몰래’가 아니다. 변명하자면 그건 동춘서커스 차력 쇼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시대에 뒤떨어져 촌스러운데, 촌스러움이 과도한 화려함과 결합하니 희한한 재미가 있다. 이런 걸 두고 키치(kitsch)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인 대회 중 최고봉은 역시 미스 유니버스다. 1980년대 한국에서 미인 대회는 올림픽에 가까운 국가적 행사였다. 나는 아직도 1988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잊지 못한다. 미스코리아 장윤정이 한국 후보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태국 후보에게 밀려 2위를 하는 순간 전 국민이 한탄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올해 미스 유니버스 1위는 덴마크 대표다. 금발 백인 여성이다. 2위는 나이지리아 대표다. 흑인 후보가 금발 백인 후보를 축하하는 사진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에 휩싸였다. 지난 몇 년간 세계를 지배한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이었다. 오랜 미의 기준은 무너져야 한다고 모두가 외쳤다. 이런 시대에 금발 백인 미스 유니버스라니. 역시 미국 소셜미디어는 난리가 났다. “인종차별적 결정”이라거나 “흑인 여성은 항상 뒷전”이라는 불평이 쏟아졌다. 관련 기사도 쏟아졌다.
언제나 뒷전인 동양인으로서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영화 평론가로서 변호하자면 금발 백인 여성은 온갖 영화에서 머리 나쁘고 성격 더러운 치어리더 악당으로 등장하던 존재다. 그런 고정관념을 역으로 이용한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도 있다. 올해 미스 유니버스 역시 어쩌면 ‘모색(毛色) 다양성’을 위한 작은 발걸음이 아닐까.
물론 농담이다. 농담을 하고서도 농담이라는 변명을 굳이 붙여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 이 글의 진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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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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