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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칼 빼든 44세 美국방 “워크 오물 묻은 장군들 집에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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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세 美국방 후보가 칼 빼든 이유

조선일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내정자.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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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에 텔레비전 진행자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44·예비군 소령)가 12일 파격 발탁된 것은 군대 내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과 워크(woke·깨어있다는 뜻) 문화를 뿌리 뽑으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현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군은 다양성(Diversity)·평등(Equity)·포용(Inclusion)의 앞 글자를 딴 DEI라는 개념을 도입해 성별·성적지향성·인종 등에서 소수 권리를 증진하고 옹호하는 여러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PC·워크 사조에 물들어 군의 생명인 기강과 규율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비판도 커졌다. 군대 내 PC·워크 문화 척결은 트럼프의 핵심 공약이다. 트럼프는 유세 때마다 “트랜스젠더·여군을 더 포용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바이든의 노력을 철회할 것”이라고 했다. 헤그세스 자신도 국방장관 지명 전인 7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지구상 가장 멍청한 표현이 ‘다양성이 군대의 힘’이라는 것”이라며 “지도자들이 준비 태세와 실력주의에 집중해야지 DEI, 워크라는 오물이 묻은 모든 장군들은 집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흑인으로는 사상 두 번째 합참의장으로 임명한 찰스 브라운의 해고까지 주장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13일 “헤그세스의 등장으로 성전환자의 군 복무가 금지되고 낙태 지원 제도가 폐지되는 등 현 바이든 정부 정책이 대폭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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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공군기지 홈피에 ‘동성애 인권 운동의 달’ 축하 - 미국 앤드루스 공군기지 홈페이지에 게재된 프라이드 먼스(동성애 인권 운동의 달) 축하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 동성애의 상징색인 무지개 색깔 손을 한 군인이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미군이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정책을 폐기하고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밝히며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제도는 이후 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폐지와 부활을 반복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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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2009~2017) 행정부와 조 바이든(2021~) 행정부에서 미군은 DEI라는 이름으로 과감한 수준의 다양성 중시·소수권익 옹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것이 성소수자 관련 정책이다. 미군은 그동안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말아야 하고 상관들도 이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복무를 허용하는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을 유지했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이 정책을 폐기하고 순차적으로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동성애 인권 운동의 달인 매년 6월 국방부와 예하 조직 및 각 부대 차원에서 다양한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한국식으로 치면 집중 정훈 교육을 한 셈이다.

전투 부대도 여군에게 문호를 열도록 했다. 오바마 행정부이던 2013년 국방부는 육군 레인저와 해군 네이비실 등 최정예 특수부대를 포함해 모든 전투부대에 여군을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체력 검정에서 남녀의 합격률 차이가 커지자 검정 기준을 완화하거나 폐기하는 경우가 잇따랐다. 국방수권법(NDAA)의 지난해 개정안에서 전투 능력 평가 요소로 기존의 근력·지구력·속도·민첩성·유연성·순발력·유산소에서 근지구력과 유산소 능력 두 가지만 측정하게 하는 등 여성 전투병 양성이 쉽도록 법까지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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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이 같은 조치에 대한 군 안팎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남녀의 기본적인 체력 차이뿐 아니라 극한의 환경에서 피부를 맞대고 지내야 하는 특수 상황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첫해인 2017년 “우리 군대는 승리에 집중해야 하며 성전환 군인들이 가져올 막대한 의료 비용과 혼란을 떠안을 수 없다”며 성전환자 군복무 금지 조치를 시작으로 오바마 시절 조치들의 폐지에 나섰다. 그러나 바이든은 2021년 취임 후 트럼프의 조치를 다시 무효화하고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행정 명령을 내리면서 “포용력이 있을 때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후 미군 내 PC·워크 사조는 다시 탄력을 받았지만 논란도 함께 커졌다. 2022년 5월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자 국방부는 낙태 금지 지역에 사는 여군이 원정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여행 경비를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독일의 미군 부대에서는 성전환자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주제로 한 동화책을 읽어주는 행사가 열려 논란이 됐다. 네바다주 공군기지에서는 ‘드래그 쇼(여장 남자 쇼)’가 진행되려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직권으로 취소시키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7월 공화당 소속의 캐빈 매카시 당시 연방 하원의장이 “우리는 디즈니랜드가 우리 군대를 훈련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은 미군을 바라보는 보수층의 시각이 집약된 표현으로 인식됐다.

군대 내 PC·워크에 대한 반감을 기폭시킨 계기는 2022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 함락이었다. 탈레반의 공세에 밀려 미군이 쫓겨나듯 철수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이념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미군 전투력이 약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미군 아프간 철수는 트럼프 1기 행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으로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20년 전 압도적 공격력으로 탈레반을 몰아냈던 개전 초기 모습과 대비되는 초라한 결말에 군 기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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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그레그-애덤스 기지로 개명되기 전 포트 리 기지의 이름이 적힌 안내판. /미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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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질식사하면서 촉발된 인종 차별 반대 시위를 계기로 남북전쟁 당시 흑인 노예 제도를 옹호한 남부연합군 소속 군인들을 따서 명명한 미군 시설 이름을 바꾼 것도 PC·워크의 범주에서 논란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남부연합과 관련 이름을 가진 군사시설 아홉 곳 이름을 바꿨다. 남부연합군 사령관 로버트 리를 기린 버지니아주 ‘포트 리 기지’는 2차 대전에서 활약한 흑인 남녀 군인 아서 그레그 중장과 채러티 애덤스 얼리 중령의 이름을 딴 ‘포트 그레그-애덤스 기지’가 됐다. 하지만 로버트 리에 대해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성급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헤그세스가 “DEI, 워크라는 오물이 묻은 모든 장군들은 집에 가야 한다”고 장성들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한 것은 트럼프의 의중을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2020년 미 전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진압에 군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고위 간부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에스퍼를 경질한 그는 군 장성들에 대한 불신감이 더욱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헤그세스가 국방부 수장이 될 경우 각 군의 운영 체계와 작전 교리 등에서 PC 색채를 대대적으로 지워내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군 기지 이름을 환원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PC주의와 워크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은 다양성을 추구하고 성소수자 같은 소수 계층이나 약자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것을 말한다. 차별을 막고 포용하자는 취지지만, 과도하게 PC를 강조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또 다른 폭력’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워크(woke)는 미국 사회의 인종·성·성정체성 분야에서의 차별에 저항한다는 것을 뜻한다. 깨어 있다(wake)의 과거분사(woken)를 흑인들이 ‘워크(woke)’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최근엔 지나치게 PC주의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의미로도 쓰인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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