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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기고]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 자아실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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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해 일반 작업 환경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특별히 준비된 환경에서 직업 훈련을 받거나 직업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을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직업 재활 시설은 중증 장애인에게 고용과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나라 직업 재활 시설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같은 법률에 근거해 1986년 자립 작업장 설치·운영 계획에 따라 보호 작업장 22개가 설치되면서 본격화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직업 재활 시설은 811개소이며, 이용 장애인은 2만1225명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에 비해 장애인 고용의 대안적 역할을 확립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 근로 장애인의 임금 수준이 낮고 근로 환경도 열악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최근 매출과 장애인 임금 향상을 위한 경영 철학 도입, 마케팅의 강조 등 직업 재활 시설에 시장성을 위한 기능을 채근하면서 직업 재활 시설은 점진적으로 공익성이 침식되고 주변화되는 실정이다

일찍이 헤겔은 ‘노동하는 주체는 타자에게 이익을 주고 상호 인정을 받을 때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해나 아렌트는 노동을 넘어선 인간 상호 간의 유기적 관계를 맺는 ‘작업’과 ‘행위’에 인간다운 활동의 고유성이 있다고 통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증 장애인에게 일은 단순한 소득 창출 수단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지역사회에 통합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직업 재활 시설을 이용하는 발달장애인들은 가족 부양이나 생계 유지보다 사회 참여를 통한 삶의 활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개별 주체들의 노동에 대한 보상은 업적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직업 재활 시설에서 중증 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은 업적 원리에 의해서만 결정돼서는 안 된다. 이는 악셀 호네트가 ‘사회적으로 양화 가능한 특정한 효용을 지닌 노동이란 비록 재생산에 필요하더라도 다른 모든 활동 부문들을 희생시키는 특정 집단 중심의 가치평가의 결과일 뿐’이라고 했던 통찰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동안 한국의 직업재활시설은 국가를 대신해 중증 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자존감을 보호하고 사회 참여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직업 재활 시설의 본질적 의미이자 핵심적 요소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업 재활 시설이 영리 법인이나 일반 기업과는 다른 가치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비(非)시장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직업 재활 시설이 중증 장애인의 소득 향상을 위한 단순화된 역할과 기능으로 골몰하고 일반 기업의 경영 기법을 습합한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주변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밀려 중증 장애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가 아닌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왜곡해 취급함을 의미하게 되며 결국 이들의 자립 생활을 위한 사회 참여 기회를 극도로 제한하게 될 것이다.

직업 재활 시설은 시장 논리에 따르기보다는 본연의 사회적 가치를 향해 가야 한다. 중증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것이 직업 재활 시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임효순 경기도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회장


[임효순·경기도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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