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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투데이 窓]노벨 과학상 이변의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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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우리에게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놀랍고도 기쁜 소식이었지만, 2024년 노벨 과학상도 대이변이었다. 올해 물리학상은 머신 러닝과 인공신경망 연구의 토대를 닦은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에게 돌아갔고, 화학상 주역은 단백질 연구에 기여한 3명에게 주어졌다. 물리학상 수상자 힌턴, 화학상 수상자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 연구원 등 셋은 인공지능 연구개발을 선도해온 빅테크 기업 구글이 배출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인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되는 노벨상은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평화 문학 경제 등 6개 부문에 걸쳐 선정된다. 이중 과학상은 기초과학 이론연구나 실험증명 업적에 대해 주어진다는 게 그간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기초과학도 실험연구도 아닌 가상 세계 연구와 컴퓨터 공학 연구에 주어져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AI 연구로 노벨 과학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 의미가 크다. 2002년 인간 의사결정 과정 연구로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자신의 연구에 컴퓨터 모델링과 알고리즘을 활용한 바 있다. 하지만 AI나 컴퓨터과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과학계 최고 권위의 노벨 과학상이 AI 연구에 주어지고, 그것도 한꺼번에 두 분야에서 세 명이나 선정된 것은 주류 과학계가 AI 연구의 중요성과 파급효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변화를 반영한다. 세상을 바꾼 월드와이드웹, 검색 엔진, 스마트폰 개발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진격의 AI는 노벨상 문턱을 가뿐히 넘어섰다.

또한 올해 노벨상은 AI가 실제 과학연구에 어떻게 활용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과학은 기초 원리를 밝히는 연구, 기술은 과학원리를 응용하는 것'이라는 전통 관념을 깼다. AI로 과학원리를 규명하는 것이 과학인지, 아니면 기술인지를 구분하는 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AI 연구로 물리학상, 화학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과학기술 영역의 구분이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홉필드와 힌튼은 정통 물리학자가 아니지만 그들의 신경 회로망, 인공신경망 연구는 물리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화학상 수상자 3인도 정통 화학자가 아니지만, AI 로제타폴드와 알파폴드로 단백질 구조를 설계·예측한 연구가 인류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16~17세기 시작된 과학혁명은 과학적 방법론을 정립하고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다져 인류의 사고방식과 지식을 혁신했다. 이제 과학혁명은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2016년 다보스 포럼이 4차 산업혁명을 의제로 채택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다면, 2024년 노벨위원회가 AI 연구에 상을 몰아준 것은 'AI 시대로 전환'의 공식화로 해석할 수 있다. AI는 과학연구의 주류 반열에 올랐고 기초과학 신약 개발 콘텐츠 생성 재난 예측 등 분야를 막론하고 두루 적용이 가능한 범용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AI시대 혁신의 아이콘 젠슨 황은 올 초 어느 콘퍼런스에서 "신약 개발에서도 컴퓨팅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AI를 활용한 생명공학 기술은 가장 유망한 산업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생명공학이 융합될 거라는 그의 예측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AI가 의료와 바이오 헬스에 본격적으로 응용된다면 지금까지 불가능해 보였던 바이오 난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천하의 진시황도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는 AI 덕분에 무병장수라는 인류 공통의 꿈을 향해 성큼 큰 걸음을 내딛게 될지 모른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던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AI 연구개발은 인류 도약을 위한 또 다른 역사적 발걸음이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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