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연극 무대에 헌신한 배우 권성덕(84)씨가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2022년 연극 '햄릿'에 '무덤파기 2' 역으로 출연했을 때의 모습. /신시컴퍼니 |
‘야인시대’ ‘영웅시대’ 등 드라마에서 이승만 대통령 역할로 널리 알려진 연극배우 권성덕(84)씨가 13일 오후 3시 50분 별세했다.
생전에 “난 미련해서 정통 연극만 했다”고 했던 연극 배우. 평생 200 편 넘는 연극 무대에 서며 힘 있으면서도 정확한 화술, 인간미를 드러내 보이는 선 굵은 연기를 인정 받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권력자부터 현실을 고민하는 지식인, 관객을 폭소하게 하는 희극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상을 소화했다. 특히 스스로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악역을 맡았을 때 훨씬 더 신이 난다”고 했을 만큼 독한 악역이나 고집센 노인, 재벌 회장 등 강한 캐릭터의 배역에 강했다.
1940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귀국한 뒤 전남 나주에서 성장했다. 배움에 목말랐던 소년 권성덕은 16세에 상경, 구두닦이를 하며 야학을 다녔다. 야간 고교를 다닐 땐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기구 소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찍이 연극에 빠져, 집에는 “국문과에 갔다”고 둘러대고 중앙대 연극과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내지 못해 중퇴했다. 그는 “내가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늙은이 역을 많이 했다”고 말하곤 했다.
1963년 2인극 ‘동물원 이야기’에 추송웅의 상대역으로 데뷔했다. 1965년 극단 가교의 창단 멤버가 됐고, 1972년 국립극단에 입단한 뒤 1994~95년엔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지냈다. 드라마 ‘풀잎마다 이슬’ ‘산 너머 저쪽’ 등에도 출연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드라마 속 역할은 ‘무풍지대’의 이기붕 역과 이후 ‘야인시대’ ‘영웅시대’ ‘서울 1945′ 등의 이승만 역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연기할 당시 호통치는 모습은 지금도 ‘인터넷 밈’으로 쓰일 만큼 화제를 모았다.
2014년 자전 에세이 ‘대통령도 되고 거지도 되고’를 펴냈을 때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철학이 없는 시대에 그나마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 연극판”이라고 말했다. “돈 굴러가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데지만, 그래도 계속 모시옷 한 올 한 올 짜듯 수공업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말년에도 연극 ‘햄릿’(2016·2020), ‘로물루스 대제’(2018) 등의 무대에 꾸준히 올랐다.
2002년 제12회 이해랑연극상을 비롯해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 한국연극예술상 등을 받았다. 2001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은 아내 이명자씨와 아들 기흥(하이닉스 차장), 딸 영주, 현주씨.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6일 오전 9시.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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