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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화)

[만물상] ‘AI 킹’ 허사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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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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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 체스를 시작해 영국 주니어 체스팀 주장, 14세 이하 세계 2위가 된 내성적인 소년은 항상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난 체스 말의 움직임을 나는 도대체 어떻게 떠올린 걸까?” 인간 뇌와 사고 과정, 지능에 대해 골몰하던 그는 대회 상금으로 컴퓨터를 산 후 금방 답을 떠올렸다. “자동차가 인간 능력을 물리적으로 증폭하듯, 컴퓨터는 인간의 정신을 확장하는 도구라는 것이 즉각적으로 이해됐다”고 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데미스 허사비스(48)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허사비스는 기상천외한 괴짜들이 몰려 있는 테크 업계에서 유독 조용한 학자형 인물이다. 거부(巨富)가 된 지금도 런던 북부에 살며 통근 기차로 출퇴근한다. 일렉트릭 음악을 들으며 일하고, 저녁 식사는 매일 가족과 함께 한다. 보드게임·체스·바둑을 즐겨 취미조차 소박한 그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함께 인공지능(AI) 업계를 대표하는 양대 거두(巨頭)이자, 천재 중의 천재로 불린다.

▶허사비스는 지난 10여 년간 급진전한 AI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알파고 쇼크’는 그의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린 상징적 장면이었다. 2011년 창업한 딥마인드를 2014년 구글에 약 7000억원에 넘겼고, 2020년엔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내는 AI인 ‘알파폴드’를 개발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도 딥마인드가 구글에 매각되자 그 반작용으로 설립됐으니 허사비스야말로 체스로 치면 AI 판의 ‘킹’(가장 중요한 말)이었던 셈이다.

▶그는 프로그래머라기보다 뇌신경 과학자에 가깝다. AI 그 자체가 주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신성을 이해하기 위한 궁극적인 도구로 사용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AI ‘알파폴드’로 생물을 이루는 근본 단위인 단백질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생명의 비밀을 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화학’ 부문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허사비스가 노벨상을 받자 테크 업계엔 “AI가 모든 것을 휩쓸어가기 전 울린 전주곡”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지금까지의 AI가 미풍이라면 다가올 AI는 태풍이 될 것이란 얘기다. 허사비스는 “현재 우리는 10년 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의 겉부분만 긁고 있는 수준”이라며 “어쩌면 과학 발전이라는 새 황금기의 시작 단계에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과학의 ‘새로운 황금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이 엄청난 변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궁금하고 착잡하다.

[김성민 논설위원·콘텐츠전략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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