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7 (화)

43세 고이즈미, ‘늙은 나라’ 日서 사상 최연소 총리 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차기 총리 지지율 1위로 급부상

조선일보

7일 도쿄 긴자에서 가두 연설에 나선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일본 차기 총리를 선출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유력 당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만약 당선되면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의 차기 총리를 선출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1981년생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전 환경상이 당선에 가장 근접한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이달 27일 치를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가 당선되면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60·70대의 노련한 정치인이 총리를 독식해 온 일본 정치판을 40대 초반 고이즈미가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1~2006년 내각을 이끈 고이즈미 준이치로(82) 전 총리의 둘째 아들이다.

“오래된 자민당을 끝내겠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지난 7일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혁신’이란 단어를 무려 56차례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당내 파벌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스캔들로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한 자민당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메시지다. 일본의 여론은 이런 고이즈미를 전폭 지지하고 있다. 민영 방송 뉴스네트워크 JNN의 이달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는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을 묻는 항목에 28.5% 지지를 얻어, 67세의 당내 거물 이시바 시게루(23.1%) 전 간사장을 앞섰다. 지난달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선 각각 21%와 23%를 얻어, 이시바(각 21%와 18%)와 동률이거나 근소하게 앞섰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그를 공개 지지했으며, ‘킹 메이커’라고 하는 아소 다로 부총재도 고이즈미 후보를 적대시하진 않고 있다.

고이즈미의 바람은 이전 일본 자민당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총재 당선은커녕, 40대 정치인이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는 사례도 거의 없을 정도로 ‘관록’을 중시하는 풍토 탓이다. 전후(戰後) 단 두 차례만 빼고 일본의 정권을 독점해 온 자민당의 역대 총재는 평균 63.8세(당선 당시 나이)다. 총 27명 가운데 60대 14명, 70대 6명이다. 50대도 7명에 그친다. 자민당의 역대 최연소 총재는 2006년 51세에 선출된 아베 신조다. 40대 정치인은 총재 선거 입후보조차 어렵다. 1972년 자민당이 총재 선거의 입후보 자격으로 국회의원 추천장을 도입한 이후에 그나마 입후보라도 한 사례는 2009년 총재 선거 때 각각 46·47세로 입후보한 고노 다로 디지털상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상이 전부다.

고이즈미 신지로가 총재 선거에서 이기면 다음 달 초 만 43세 6개월 나이로 총리에 오르게 된다. 만 44세 3개월이던 1885년 12월 초대 총리에 오른 이토 히로부미의 기록도 깨는 것이다. 취임 후에 미·일 정상회담이라도 한다면 1942년생으로 82세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가 거의 갑절이다. 또 후쿠다 다케오(1976~1978)와 후쿠다 야스오(2007~2008) 전 총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부자(父子) 총리’가 된다.

조선일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도쿄 옆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고이즈미는 고모인 고이즈미 미치코 손에 자랐다.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그의 출생 직후에 이혼했고, 그 사실을 중2 때에야 알았다고 한다. 간토학원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땄다. 2009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9년 아베 내각과 2020년 스가 내각에서 환경상을 연이어 지냈다. 남성으로는 전후 최연소 각료였다. 형은 TV 드라마 배우 고이즈미 고타로다. 아내는 후지TV 아나운서 출신으로, 프랑스·일본인 혼혈인 네 살 연상 다키가와 크리스텔이다. 2019년에 ‘속도 위반’으로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인생 전체가 빼어난 각본인 셈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총리 대세론’의 마지막 벽은 ‘TV 토론’이 될 것으로 보인다. TV 토론이 아홉 번 예정된 가운데 각료 경험이 한 번에 불과한 고이즈미가 외교·안보·경제와 같은 모든 사안을 토론하다가 말실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40대 후보인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9) 전 경제안보담당상의 존재도 부담스럽다. 40·50대 젊은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고바야시가 언제라도 ‘40대 대세론’을 뺏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가 총리가 됐을 때 한일 외교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사다. 아버지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재임 중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그 역시 매년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있다. 다만 일본 정치권에선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면 전임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이어 한국 중시 외교를 이어갈 것’ ‘총리 자격으로 섣불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고이즈미는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다고 알려졌다. 곽경택 감독이 연출하고 유오성·장동건이 출연한 2001년 영화 ‘친구’를 일곱 번이나 봤다고 한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