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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아파트매매 4채당 1채는 정책금융…갈짓자 정책에 집값도 혼란도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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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주택시장에 정책금융을 과도하게 풀면서 다시 집값이 뛰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송파구 등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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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주택시장에 정책금융을 과도하게 풀면서 다시 집값이 뛰고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가계부채 위험이 더욱 커졌다. 몇 개월 만에 반대로 가계 빚을 누르고 집값을 잡겠다고 갑자기 정책 방향을 바꾸면서 시장의 혼란 또한 가중됐다.



지난 25일 <한겨레>가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을 통해 한국주택금융공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특례보금자리론 가운데 지난 한해에만 10만2671건(25조8126억)이 신규 주택구매 용도로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아파트 매매 건수인 41만1812호(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정보 기준)의 4분의 1에 이르는 규모다. 지난해 서울 전체 매매 규모(3만6439호)의 거의 3배, 경기도 전체 매매 규모(10만4350호)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가격을 크게 좌우할만한 거래량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신청을 받아 지난 4월까지 한시적으로 공급한 정책금융으로 대부분이 지난해 시장에 풀렸다.





■ 특례보금자리론 65%가 신규 주택구매





전체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액은 41조8336억원(신청이 아닌 실제 집행 기준)이다. 이 가운데 지난 4월까지 신규 주택구매에 모두 27조1567억원이 투입됐다. 전체 공급액의 65%에 이른다. 건수로는 모두 10만8288건이나 된다. 이자를 좀 싸게 해줄테니 집을 사라고 정책금융을 지렛대로 신청 가구에 평균 2억7157만 원을 빌려준 셈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신규 주택구매와 기존 대출상환(대환), 임차보증금 반환(보전 용도)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금액 기준 주택구매 비중이 전체의 약 3분의 2로 가장 크고, 대환과 임차보증금 반환이 각각 28.3%, 6.8% 였다.



주택 유형별로 보면 특례보금자리론의 95%가 아파트의 매매와 전세시장에 흘러들어 갔다. 아파트 외 주택에는 5% 미만 지원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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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시내 한 은행 앞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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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보금자리론은 신생아 특례대출과 함께 서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돕고 이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선보인 정책이지만, 정부가 나서 집을 사도록 부추기면서 이후 아파트값 상승의 불쏘시개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남근 의원은 “정책 금융이라는 게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에 썼다”며 “그게 지금의 집값과 전셋값 상승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규모로 정책금융을 뿌리기 전 아파트 시장은 하향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던 2020년 아파트 매매 건수는 전국 기준 93만4078건까지 올라갔다가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2022년에는 29만8581건까지 줄었다.



그런데 지난해 11만 건 이상 매매가 늘어났다. 이는 지난해 정책자금 공급을 통한 매매 건수와 비슷한 증가 폭이다. 달리 말해 특례보금자리론 물량을 빼면 아파트 매매는 2022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특례 대출 시행 뒤 아파트 매매 2배 증가





아파트 매매의 월별 추이를 보면 정책금융의 효과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행정구역별 아파트 매매거래 현황’을 보면 2023년 1월 전국적으로 1만7841건을 기록해 2006년 1월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거래량을 보였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 급반등한다. 그즈음 특례보금자리론이 아파트 매매 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된다. 그 덕에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 건수는 평균 3만5816건으로 1월보다 두 배 늘었다. 같은 기간(2023.02~12) 신규 주택구입 용도로 공급된 특례보금자리론은 매달 평균 9334건에 이른다. 전체 아파트 매매 4건 가운데 1건꼴로 특례보금자리론 꼬리표가 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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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용하던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이 끝날 즈음 새롭게 신생아특례대출(이하 신생아특례)이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해 1월 이후 기존 보금자리론과 디딤돌 대출 등의 공급 재개도 겹쳐, 정책금융의 효과를 키웠다. 곧이어 거래 증가와 함께 집값이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자산시장은 기본적으로 사다리 구조를 갖는다. 9억원 짜리 집을 팔고 10억원 짜리 샀다가 다시 15억원 짜리를 사는 식으로 갈아타기 수요를 일으킨다. 9억원 이하(특례보금자리론 주택가격 요건) 정책금융 대출이 집값 상승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신생아 특례 겹쳐 아파트값 급등





특례보금자리론보다 규모는 작지만 신생아 특례도 실행하면서 정책 개입 효과를 배가시켰다. <한겨레>가 김남근 의원을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받은 신생아 특례 자금 용도별 실행 실적을 봤더니 지난 1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신규 주택구매에 1조9830억원(6657건)이 집행됐다.



집을 사는 데 평균 약 2억9800만원을 빌려줘 특례보금자리론보다 가구당 대출액이 컸다. 신청은 같은 기간 2조9781억원(9312건)이 이뤄졌다. 신청 뒤 시차를 두고서 실행이 늘어나는 구조다.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한 무주택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신생아 특례 운용 규모는 약 27조원이다. 7월 말 현재 신청 기준으로 약 27%, 실행 기준으로는 18% 진척도를 보인다. 특례보금자리론과 마찬가지로 신규 주택구매와 전세, 기존 대출 상환으로 나뉜다.



신생아 특례도 아파트로 쏠렸다. 주택 유형별로는, 실행 금액 기준 전체의 95%가 아파트로 향했다. 특히 구매는 아파트 집중이 더욱 심해 97%에 이른다. 지역적으로는 서울과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에 신생아 특례의 절반이 넘는 53%가 공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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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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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이 대량으로 뿌려진 뒤 서울의 강남 아파트 중심으로 집값이 방향을 틀어 뛰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에서 서울의 아파트매매가격지수(2021년 6월 기준 100)를 보면 2022년 1월 정점을 찍은 뒤 그해 2월부터 15개월 연속 하락했다가 지난해 5월 하락세를 멈췄다. 이후 서서히 상승한 뒤, 지난해 말에서 올 초 소폭 하락했다가 재반등했다. 지난 7월에는 월별 기준으로 2019년 12월 이후 4년 반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일부 지역은 이미 전고점(과거 최고치)을 넘어섰다.





■ DSR 연기 2달 만에 되레 강화





특례 대출에 더해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 연기도 집값을 추동했다. 가계부채의 양적, 질적 개선을 위한 스트레스 디에스알 2단계 시행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6월 말 정부는 돌연 시행을 두 달 뒤(9월 1일)로 미뤘다. 디에스알은 차주가 가진 전체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소득으로 나눠 산출한다. 이에 터 잡은 스트레스 디에스알 제도는 디에스알을 산정할 때 잠재적 금리 인상 폭을 적용해 대출한도를 줄인다.



정부가 돈줄을 죄는 타이밍을 늦추자, 한도가 줄어들기 전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를 자극했다. 집값이 꿈틀거리는데도 부동산에 돈을 더 공급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 참여자들에게 보낸 셈이다. 하지만 집값이 예상보다 빠르게 뛰자, 정부는 두 달 만에 태도를 확 바꾼다. 당초 예정보다 더 강화된 스트레스 디에스알 제도를 수도권 중심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광수 대표는 “윤석열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이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 시류에 맞춰 눈치를 보면서 스트레스 디에스알을 한다고 했다가 연기하더니 이제는 또 강화한다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뢰인데 정부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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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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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했던 정부는 정책 선회마저 급발진이었다. ‘특례’란 이름까지 붙여 예외를 둬가며 지난해부터 기존보다 문턱을 낮추고 낮은 금리로 집을 살 수 있도록 공격적으로 돈을 풀었던 정부가 이제 무주택자 대상 저금리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 대출의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렸다.





■ 정책금융 탓 가계부채 다시 급증





13차례 동결된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와 금융권의 조달 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정책금융 금리 인상은 거꾸로 간 조처다. 정책을 180도 전환한 근본 원인엔 한국 경제 최대 리스크로 떠오른 가계부채를 키우면서까지 주택시장의 과열을 부추긴 정부에 있다.



정책금융을 수단 삼아 주택 시장에 유동성을 과잉 공급했다가 부작용이 커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서둘러 유동성을 축소하면서 정책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뒤늦게서야 금융권을 압박해 대출을 죄이고 있다. 갑자기 높아진 문턱과 인상된 금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대출 실수요자의 몫이다.



정책금융을 지렛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으로 불어난 가계부채도 다시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가계신용(포괄적 가계부채)은 2020년 4분기 정점을 찍은 뒤 증가 폭이 크게 줄어 2022년 4분기 감소로 전환했으나, 지난해 2분기부터 다시 증가 추세로 전환했다. 그 중심에 주택담보대출이, 그 뒤에 정부가 있다.



지난 2분기에도 전기대비 약 14조 원의 가계부채가 증가했는데 이는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줄었는데도 주택담보대출이 같은 기간 16조원 늘어난 탓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의 약 60%는 ‘디딤돌 대출’ 등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금융상품이었다. 디딤돌 대출은 올 상반기에만 15조원이나 풀렸다. 앞서 풀기 시작한 특례대출과 함께 디딤돌대출은 집값을 끌어올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 특례대출 30대가 절반 이상





정책금융을 통로로 빚을 내 집을 산 건 주로 30대다. <한겨레>가 김남근 의원을 통해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신규 주택구매에 공급된 특례보금자리론의 55%에 해당하는 15조원가량이 30대에 공급됐다. 지난해 기준 조금 싼 금리로 집을 사긴 했지만 이들은 30~40년 걸쳐서 가구 소득의 4분의 1 안팎을 원리금으로 상환해나가야 한다. 금융 비용을 빼면 이들의 처분 가능한 소득 또한 크게 줄어든다.



신생아 특례의 경우 약 80%가 30대에 쏠렸다. 실행 기준으로 약 4조원에 이른다. 신생아 특례 중 신규 주택구매에 공급된 경우 평균 총부채상환비율(DTI, 연 소득 대비 금융비용 부담률)도 약 25%(부부합산 소득 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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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및 역동 경제 로드맵 발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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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사람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게 절대 선이 아니다. 자칫 부채를 키워 거시 경제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번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그 실례다.



위기의 근본 원인에 급증한 주택담보대출이 있었다. 클린턴에 이어 부시 행정부까지 너도나도 손쉽게 집을 살 수 있도록 대출 문턱을 확 낮추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를 금융화시켜 부실을 숨기다가 나중에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 라구람 라잔 미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분석이기도 하다.





■ 정책 신뢰 회복 뒤 상승 기대감 낮춰야





정부가 나서 집을 사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은 미국의 금융위기 이전의 모습과 닮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주택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정책금융을 활용했다는 의심을 살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부터 서울 아파트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파트값이 임기 시작점 대비 거의 10%가량 떨어질 즈음, 특례보금자리론이 나왔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관련 단골 레퍼토리는 ‘시장 원리’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한 발언에 잘 압축돼 있다. “주택 정책을 시장 원리에 따라 정상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 연착륙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해달라”.



그런데 이미 가계부채가 언제 터질지 모를 포화 상태인 데다가 실질소득마저 정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앞장서 빚을 내 집을 사라고 가계에 공격적으로 대출하는 게 시장 원리와 맞는지 의문이다.



시장 원리가 지고지순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금융을 활용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시장에 ’더 늦기 전 집을 사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냈고,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정부가 의도한 ’연착륙’이 아닌, ‘경이륙’(갑작스러운 상승)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 수준이 다시 광풍이 불었던 시기로 회귀하는 데는 사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다뤘던 요인들 외에도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유동성 공급 기대감과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급 부족 요인 등이다.



어떤 원인이든지 이미 한껏 높아진 집값 추가 상승 기대감을 낮추고 정책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국민 전체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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