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3 (금)

“격 높은 차기 대사 임명, 한‧중 관계 탄력 받게 할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지난 21일 '지금의 한중 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한중우호협회(회장 신정승)가 개최한 중국전문가포럼에서 신정승 전 주중국 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2주년을 맞는 날이다. 올해 들어 한‧중 간 고위급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차기 주한 중국대사 인선이 한창이라 한‧중 관계 정상화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중우호협회(회장 신정승)는 지난 21일 '지금의 한중 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중국전문가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중국과 한‧중 관계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인식, 대중 외교에 대한 국민의 요구, 한‧중 협력 및 상호인식 등을 주제로 심층적인 토론이 펼쳐졌다.

중앙일보

한중우호협회가 주최한 이번 중국전문가포럼은 2022년 12월 첫 포문을 연 이래로 정기적인 모임 갖고 한·중 관계, 중국 경제, 대중 외교 등 이슈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발제)

한‧중 관계는 크게 2016년 사드(THAAD)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수교 이후 한‧중 관계엔 늘 기복이 있었다. 과거엔 문제가 생기면 양국 지도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감정 악화를 막으려 노력했지만 사드 배치 이후는 그렇지 않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국민은 여전히 71.9%이고, 지난 2월 한국리서치 조사도 ‘한중 관계가 나쁘다’는 인식이 65%라고 나온다. 다만 이 수치가 지난해 78%였던 것에 비해 13%P 떨어진 것을 보면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여론 조사를 종합해 보면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리 국민은 대다수가 중국에 부정적이지만 중국이 한국에 여전히 중요한 나라라는 인식 역시 80% 이상이다. 또 대중 외교에서 국민이 우선 바라는 점은 사드 보복, 요소수 사태 같은 중국의 경제 공세에 대한 대응과 협력이다. 북핵 공조와 국민감정 회복은 그다음이다. 또 미‧중 대립 시 국민의 과반수는 우선 ‘중립 유지’, 그다음 ‘미국 지지’를 바란다. 또 한‧중 경제에 대한 인식도 ‘기회’에서 ‘위협’으로, ‘상호 보완적’에서 ‘상호 경쟁적’으로 바뀌었다. 한‧중 관계 개선이 한‧미‧일 협력 강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보는 국민도 60% 이상이다.

중앙일보

지난 21일 한중우호협회가 개최한 중국전문가포럼에서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이 '지금의 한중 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불편했던 한‧중 관계에 개선 여지가 보이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7월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의 이임이다. 지난해 ‘베팅’ 발언 논란 이후 중국이 1년 넘게 뜸 들이다 싱 대사를 교체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북‧러 밀착이다. 특히 신냉전에 반대하는 중국은 북‧중‧러 대 한‧미‧일 진영을 부추기는 북한에 불만이 많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도 큰 부담이다. 또 시진핑 주석이 내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할 경우 사전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싱 대사 교체는 중국이 대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읽힌다. 여론 조사에서 보듯 우리 국민의 60%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우선순위는 한‧미, 한‧일, 한‧미‧일 협력 강화 순이었는데 이제는 한‧중 관계 개선과 협력 확대를 모색할 시기다.

한‧중 관계, 어떻게 개선하나. 차기 대사 임명이 관건이다. 북한에 차관급 인사를 파견한 만큼 한국에도 격에 맞는 인물을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통 천저우(陳洲) 대외연락부 부부장, 류진쑹(劉勁松) 외교부 아주사 국장 등이 거론된다. 격 높은 대사가 온다면 한‧중 관계가 탄력을 받아서 오는 11월 페루 리마 APEC에서의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순서상 시 주석이 방한할 차례지만 중국은 냉랭한 한국 내 분위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먼저 오길 바라는 눈치다. 한국 입장에선 실리 외교 차원에서 선제 방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한령(限韓令) 해제, 공급망 안전 확보, 탈북자 인도적 처리 등 중국으로부터 합당한 ‘선물’을 받아내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다. 만약 윤 대통령 방중 후 내년 시 주석의 경주 APEC 참석 및 방한까지 성사된다면 한‧중 관계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중 관계와 차기 주한 중국대사



중앙일보

신정승 한중우호협회 회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정승 한중우호협회 회장(사회)

다가오는 24일은 한‧중 수교 32주년이다. 지난 5월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리창(李強) 중국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면서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에 숨통이 트였다. 이어 2+2 차관급 외교‧안보 대화와 외교 차관 전략대화 등이 개최되면서 최근엔 한‧중 양국 간 대화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모양새다.

중앙일보

조상훈 전 주호주대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상훈 전 주호주대사

여론 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인 인식이 70%라고 하는데, 미국이나 일본의 호감도 조사를 보면 훨씬 더 심각하다. 일본의 경우 90% 이상 국민이 중국을 안보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고, 미국도 80% 이상 국민이 중국에 비호감을 표시했다. 중국을 둘러싼 전 세계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삭막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이 중국에 인접한 나라인 만큼 우리 국민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판단하고 있고 중국에 대응하는 방식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박진범 KBS 시사교양국 PD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진범 KBS 시사교양국 PD

차기 대사 임명과 관련해 한국에서는 보통 지한파(知韓派) 친한파(親韓派)가 올 것이라 기대하는데, 오히려 이번에는 한국을 잘 모르는 인물을 보낼 가능성도 있지 않나?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8월 말에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대사가 오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 이유는 싱 대사의 ‘베팅’ 발언 논란 때문이다. 중국어로 발언했으면 뜻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 해명하고 수습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본인이 직접 한국어로 말한 게 문제였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잘 못하더라도 격 높은 대사가 왔으면 하는 희망이 큰 것 같다. 싱하이밍은 제8대 대사였는데, 그간 부임한 대사들을 보면 한국통 4명, 일본통 3명, 국제통 1명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통인 대사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큰 것도 사실이다.

중앙일보

박준용 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준용 전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

중국이나 한‧중 관계의 변화를 볼 때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떤 학자나 지도자 개인의 생각이 한‧중 관계에 대한 정책으로 나타나진 않는다고 본다. 사실상 한중 수교 과정도 단순히 몇몇 사건 때문이 아니라 큰 정세 변화에 의해 이뤄진 게 아닌가. 현재의 한‧중 관계도 큰 구조적 판 위에서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사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양국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가 바뀌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어떤 대사가 와도 한‧중 관계에 큰 영향을 주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신봉길 한국외교협회 회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봉길 한국외교협회 회장

지난 5월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대외연락부장의 일본 방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기시다 일본 총리는 장관급인 류젠차오 부장을 거의 정상회담 급으로 예우했는데, 만약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아마 큰 논란이 됐을 거다. 그런데 이를 문제 삼은 일본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지나치게 격식이나 의전의 사소한 부분까지 따지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콤플렉스가 아닌가 싶다. 상호 방문의 횟수를 따지기보다는 필요하면 어떻게든 먼저 방문하는 실용 외교에 찬성한다. 그리고 국제 외교에서 상호 존중은 당연한 이치다.

중앙일보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

한국 외교는 지나간 일에 대한 복기를 잘 하지 않는 게 문제다. 당장 사드 사태와 관련해서도 배치 결정 과정, 중국과의 소통, 사드의 효용성 검토 등 여러 유관 문제가 있는데 제대로 논의가 안 됐다. 지나간 일을 복기해서 교훈을 얻고 또 이를 정책에 활용하는 기능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한‧중 관계와 경제 협력



중앙일보

전태동 전 시안 총영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태동 전 시안 총영사

앞으로 한‧중 관계가 더 좋아질지는 의문이다. 한‧중 관계는 한국만 노력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큰 틀이 있다. 하나는 아시아 내의 균형이고 또 하나는 미‧중 관계다. 중국 GDP는 현재 일본의 4배, 한국의 10배가 넘고 미국의 70%에 달한다. 한‧중은 경제 규모 차이도 크고 체제 자체도 크게 달라서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처럼 되기 어렵다. 중국은 변화가 느리게 진행됐지만 결국 꾸준히 성장했고, 힘을 기반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주변국에 대한 태도를 바꿔왔다. 많은 국민이 한‧중 간 경제 협력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중국의 경제력 때문이라고 본다. 2022년 자료를 보면 중국의 과학기술은 이미 미국의 80% 수준까지 왔다. 중국은 이 격차를 점점 더 좁혀올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한국이 한‧중 간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우리는 한‧중 관계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어떻게 중국을 극복해야 할지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부 교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부 교수

그간 우리는 한‧중 관계를 양국 차원으로만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또 한국을 미‧중 관계 속의 한 요소로만 바라봤는데,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다양한 협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한국이 그 빈틈을 메울 가능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커지면서 한국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간 아프리카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거의 안 했기 때문에 중국과 협력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시도가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는 접근인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한국이 중국과 함께 아프리카에 동반 진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데, 굳이 한국과 이익을 나눌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반도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



중앙일보

이원엽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원엽 서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중국은 한반도를 여전히 ‘화이질서론(華夷秩序論)’의 틀에서 본다. 물론 청일 전쟁 패배 이후 이 질서가 깨지긴 했지만, 한반도에 대해 종주권을 주장하는 생각은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지도층이나 역사학자에게 여전히 깊이 남아있다. 1960~70년대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동북 3성을 돌려 달라고 하자 2000년 초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됐는데,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중국의 초중고 학생들은 물론 20, 30대 청년들 모두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중국 역사학계는 한국에 상당히 우호적이라 고구려사를 중국의 대외 관계사로 분류했지만 동북공정 이후엔 자국의 역사라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인식 면에서 한‧중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 중국은 여전히 ‘화이질서’를 답습하고 있다.

중앙일보

박상기 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상기 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과거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났을 때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었다. 미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가 쓴 책 『중국의 붉은 별』에도 마오쩌둥이 한반도는 중국의 식민지였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청나라 때 쇠약해져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내줬지만 다시 미국으로부터 이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지도자나 일반 국민도 이런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단 사실을 우리가 정확히 인지하고 대응해야 한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