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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고금리 장기화에 내수 발목잡혀" 초조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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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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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2일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린 뒤 두 시간여 만에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 속에 내수경기 침체 가능성을 우려해왔고, 통화정책 결정권을 쥔 한국은행을 향해 '간접적으로' 선제적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제안해왔다. 일각에선 한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통화정책 실기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려는 취지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한은에 압박을 가하거나 독립성을 침해할 생각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에 0.25%포인트, 혹은 0.5%포인트 금리를 내린다는데 선제 대응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한 이후 대통령실에서 즉각적으로 아쉬움을 표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대통령실과 한은이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기싸움을 벌인 사례는 역대 정부에서도 종종 있었지만, 결정 이후에는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평가를 자제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이 이같이 직접적 반응을 보인 것은 19개월 넘게 계속된 고금리 부담 속에 내수 침체 속도가 가팔라지는 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국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9% 줄어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이었던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가 11만2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급증했다고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 연구기관들은 장기화된 고금리를 내수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고개를 들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작년부터 이른바 고금리·고물가·고유가 등 '3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서민 부담이 가중됐지만,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도 고금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선 농산물과 유가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이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미국의 금리 인하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근엔 환율도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여러 지표를 볼 때 한은이 먼저 금리 인하를 단행할 만한데도 동결 기조를 역대 최장 기간 동안 유지하자 대통령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얘기다.

역대 정권에서 정부와 한은은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을 놓고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 왔다. 물가 안정만을 목표로 삼는 한은과 경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의 인식 차는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금통위 직전 "통화정책 정상화 경로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 조정이 선제적으로 되지 않으면 상당한 금융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2017년 8월엔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 금리가 같아진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1.25%로 너무 낮다"며 금리 인상을 압박했다. 해당 발언 직후 채권금리가 연중 최고치로 치솟는 등 시장 혼란이 커지자, 당시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금리 조정을 당국자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4년 9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주열 전 총재와 회동한 뒤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는 기자 질문에 "척하면 척"이라고 답변해 '한은이 기준금리와 관련해 정부와 입을 맞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불협화음이 간헐적으로 이어지자 물가 안정만을 규정한 한국은행법을 개정해 고용 안정도 한은의 목표로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날 한은은 대통령실을 포함한 여러 기관의 입장을 듣되, 의사결정은 금통위 위원들이 독립적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한은 관계자는 "여러 의견에 대해 금통위원들이 이를 참고해 통화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용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상황이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평가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런 견해를 다 취합해서 듣고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제윤 기자 / 안정훈 기자 / 한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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